1/29/2012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복
한국교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 가운데 기복신앙에 대한 비판이 교회 안팎에서 매우 강하다. 하지만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복으로 가득차 있다. 복은 성경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에 하나이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처음 주신 것이 복이다 (창1:2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복주심의 약속을 믿고 순종한다. 그 복은 이삭 (창26장) 과 야곱 (창28장)과 요셉에게도 계속해서 내려간다. 족장시대의 족장의 가장 중요한 사명중의 하나는 제사장의 사명처럼 자녀들을 복 주는 것이었다. 창세기의 시작은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시작하고 (창1:22, 28), 창세기의 마지막은 야곱이 모든 자녀들에게 하는 예언적 축복(창49장) 으로 끝난다. 신명기는 순종하면 복이 인생의 모든 영역에 내림을 강조한다. 구약의 마지막책인 말라기는 십일조를 통해서 주시는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복을 약속하신다. 예수님도 축복하셨다. 신령한 복들을 사모할 것을 명령하셨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도 복으로 시작해서 (계1:3) 복으로 끝난다 (계22:7, 14). 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복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계22:7).
따라서 성경의 복은 엄청나다. 우리가 사모하고 또 사모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고 믿는다. 하나님의 복을 무시하는 것은 교만이다. 하나님의 복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큰 죄이다. 하나님이 복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단 일초도 살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렇게 주고 싶어하시는 그 복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것이 신앙적인 태도이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복은 무엇인가? 먼저 성경적인 복은 총체적인 복이다. 과거의 받은 복 뿐 아니라, 현재의 복, 미래와 아니 영원한 세계의 복도 포함한다. 영육의 복이다. 모든 신령한 복과 모든 육신의 생활의 복이다. 다 포함한다. 한 순간이 아니고, 한 영역이 아니고, 삶의 전체에 미치는 복이다. 아니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은 다 복이고, 또한 좋은 것이다.
또한, 성경적인 복은 내가 갖고자 하는 그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복을 주시는 그 분, 하나님이 강조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복을 조건이나 환경이나 상태로 생각한다. 내가 받기 원하는 것이나, 받아 누리고 있는 상태에 초점을 맞추면 기복신앙이다. 하지만 그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성경적인 복이다.
또한 성경적인 복은 예수 안에 있는 복이다. 최고의 축복되신 예수님의 오심의 의미를 임마누엘이라고 했다. 임마누엘이 최고의 복이다. 하나님과 동행함이 복이다. 바울은 엡1:3에서 복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복이 있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주셨다고 하셨다. 우리의 복은 지금 없어서 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주신 복이다. 이미 소유한 복이다. 예수 안에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복은 이미 주신 것으로 누리게 된다.
또한 성경적인 복은 예수를 믿고 모신 내가 잘 사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예수를 믿은 내가 복의 근원으로 다른 사람을 복주는 것이 참 복이다. 아담을 복 주신 것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도 다 같은 이유이다.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복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을 때에 가능하다.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이 바로 열방이 우리로 인하여 복을 누리도록 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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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012 인도네시아 야자수 처럼
다이아 토빙은 인도네시아의 야자수 나무 이야기를 한다.
인도네시아에는 야자수 나무가 많다고 한다. 해변에서도 야자수 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단다. 어린 야자수로 부터 시작해서 40년 혹은 그 이상 묵은 야자수 나무도 많이 있다. 이 나무들은 바람에 불면 흔들리지만 뿌리가 흙 속에 깊이 박혀 있으므로 넘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성도들의 삶도 이와 아주 비슷하다. 어린 싹이 나올 때에는 이것이 언제 자랄까 생각을 한다. 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강하여 진다. 믿음이 자라는 동안에는 이리 저리로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믿음은 점점 확고하여 진다. 흔들리지 않는다. 나이가 많아 질수록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성도의 성장이다. 우리는 매일 자라야 한다. 성숙해져야 한다. 더욱 더 시험과 세파에 강하여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
주님을 위해서 살 때에 풍파가 많다. 어려움도 많다. 시험이 들 문제들도 생긴다. 우리가 넘어지기를 원하는 사단의 공격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님이 함께 하신다. 우리와 동행하신다. 매순간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다.
성도의 삶이 성숙해지면 성숙해 질수록 주위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다.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선한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 금년 한해도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우리가 나의 몸을 사랑하듯 나의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기를 소원한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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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2012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미주크리스천 김혜천 목사 컬럼에서)
새해가 되면서 충격적인 사건들의 연속이다. 한국에서는 학원 폭력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하다고 한다. 학원 폭력이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 위기이다. 학생들이 폭력에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이것이 과연 한국인가 할 정도로 충격의 연속이다. 한국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폭행을 당한 아이들이 죽어가고, 폭행을 하는 아이들도 죽어간다. 왕따를 당함으로 인하여 받는 고통으로 자살하는 일들이 미국에서도 속출하고 있다. CBS 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청소년 폭력예방재단이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한 결과 지난 2010년 한 해 동안에만 초중고교생 10명 중 2명이 학교 내에서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숫자는 전국 학생들이720여 만명임을 고려하면 140여 만명이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셈이다. 엄청난 숫자이다. 더 큰 문제는 학교폭력이 점차 저연령대의 아이들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되었는가? 한국교회언론회 (대표: 김승동 목사)가 논평을 내고 인성교육 강화를 촉구했다. 한국의 학원 폭력의 급증의 원인들로는 첫째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인성교육 경시와 학업 성적 지상주의, 둘째는 학원 폭력에 대한 처리의 미흡, 셋째로 학원 폭력의 조직화에 대한 방치, 넷째로 교육 현자의 붕괴에 대한 조장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이러한 학원 폭력의 사건은 우리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가해 아이들도 죽어가는 것이고, 피해 아이들도 죽어가는 것이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첫째로, 우리는 문제 투성인 우리 아이들을 책망하기 전에 부모들이 그 책임을 통감하고 회개해야 한다. 아이들의 인간됨의 상실은 불신앙과 세속주의에 사로 잡힌 부모들이 뿌린 씨앗을 자녀들이 거두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학교 교육에서 신앙교육이 제외되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명목으로 학교에서 하나님을 버렸다. 기도도 버리고, 성경의 가치관도 무시하고, 도덕과 윤리는 고리타분한 가치관으로 만들어 버렸다. 교육에서 하나님을 제외하고 물질지상주의인 맘몬니즘과 실용교육의 일방적인 강조로 ‘가치’를 가르치지 않고 기술만 강조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제외한 교육은 망가진 인생을 낳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로, 교회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주일학교 운동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이 시대의 학생들은 다음 세대의 주역이며, 국가의 미래이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키지도 않으면서 제대로된 인성교육을 시킬 수 없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바른 인격체로 성장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교회의 주일학교가 무너지고 있음은 이미 지적된 바이다. 특히 주일학교는 기하급수적인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신앙을 가진 부모들 조차도 신앙보다는 학교 성적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부모의 불신앙의 열매를 우리의 자녀들이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셋째로, 교회가 앞장서서 바른 신앙교육과 인격교육을 시켜야 하고, 각 지역의 교회들이 앞장서서 학원 폭력을 근절시키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교회의 성장보다 더 필요한 것은 자녀들의 신앙의 성장이다. 학원 폭력은 우리의 자녀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의 빙산의 일각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다시 들어난 학원 폭력 문제를 보면서 우리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성령님께서 죽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살려주시는 생명의 복음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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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12 2012년의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는 새로운 새해를 맞았다. 지난 한해를 되돌아 보면 정말로 엄청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한국 바로 앞 일본에서는 북부지방은 강도9.2의 지진으로 인하여 쑤나미가 일어났고,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방사능 누출로 인하여 새해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자연 재해들이 계속되고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이 많이 일어났다. 세계의 세력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 세계는 급부상하는 중국을 경계의 시선으로 본다. 미국인들의 가장 기뻐하는 일 중에 하나는 빈라덴이 사살된 사건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911 테러사건으로 일어난 세계적인 폭풍에 대하여 어떤 종지부를 원한다.
올해도 비슷하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인하여 북한의 정치적인 불안에 대한 우려가 급증된 가운데 새해가 시작되었다. 이란은 핵보유과 장거리 미사일의 위용을 나타내고자 함으로 중동의 불안을 더한다. 온 세계의 시선이 하루 하루를 우려 반, 기대 반의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새해를 보는 세상의 눈은 어떠한가? 경제적인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경제 지수는 올라간다고 하는데 서민들이 느끼는 감동은 다르다. 또한 새해는 전세계적으로 선거가 있는 해이다. 미국과 한국은 물론이고, 대만과 중국과 러시아 등 많은 나라들에서 정치적인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또한 종교적으로는 소위 2012년 종말론이 팽배한 해가 될 것이다.
금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전세계와 인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아무도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길만이 살 길이다. 항상 그래왔고 그렇게 할 때에 새로운 힘과 능력이 공급되었다.
금년에는 말씀과 기도에 전념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말씀에 전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가깝게 하자. 말씀은 어두운 시대의 빛이고, 어두운 인생의 등불이 되신다. 말씀을 붙든 사람은 어두움 속에서도 빛 가운데로 행한다. 그래서 수요일 저녁은 성경 전체를 살피는 시간으로 삼고자 한다. 중요한 흐름을 파악하는 귀한 시간이 되게하실 것이다. 매주일 계속하는 성경읽기 퀴즈에 적극 참여해 주시기를 부탁한다. 좀 더 자세하게 성경을 살피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제자훈련에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한다. 내가 말씀으로 세워지고 다른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되게 하실 것이다.
불확실한 어두운 시대에 두렵고 염려함 가운데 살 것인가? 아니면 내 발의 등불되시는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고 기쁨의 여정을 갈 것인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 함께 말씀을 소유하고 지킴으로 승리하는 2012년으로 만들어 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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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22:39)
2012년도의 말씀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주님의 명령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첫째와 둘째의 계명은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둘째도 첫째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순서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순서는 하나님 사랑 그 다음에 이웃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온 율법과 선지자들의 강령이라고 하셨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면 온 율법과 선지자들의 명령을 지킨 것과 같다는 말씀이다. 지금까지 하나님 사랑에 대한 강조는 많았지만 이웃 사랑에 대한 강조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웃 사랑에 성공할 수 없다. 또한 이웃 사랑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 사랑을 이룰 수 없다. 사실 이웃 사랑은 우리가 자신이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웃 사랑을 잘 하지 못하면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약한 부분을 든든하게 세워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웃 사랑을 말하면, 사회복음이나, 정치적인 참여나, 세속화를 연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웃 사랑은 복음의 핵심을 보여 주신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신 이유는 바로 이웃 사랑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 아픔과 괴로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선한 이웃이 되어 주셨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보여주시는 것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동 속에서 예수님께서 원수되었던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사랑을 보게 된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원수 되었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섬겨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이웃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이라고 명령하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방법이 바로 이웃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웃에서 예수를 몰라서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웃 사랑의 실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고, 소원이시고, 가르쳐 주신 전도의 방법이다. 금년에 우리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함으로 영혼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한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함으로 우리는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더 가깝게, 더 크게, 더 풍성하게 누리게 될 것이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함으로 새해를 축복의 해로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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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2011 크리스마스의 꽃 포인세티아
성탄절이 오면 교회와 가정은 포인세티아로 장식한다.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꽃인 포인세티아의 꽃말은 "축복합니다. 축하합니다"라고 한다. 크리스마스에 교회와 가정에서 행하는 포인세티아에 관한 풍습은 멕시코의 한 마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두가지 다른 버전이 있는데, 한 전설에 따르면 이 마을의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교회에서 예수 탄생을 그리는 연극 무대 앞에 선물을 가져다 두는 풍습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너무 가난해서 아무 것도 선물할 수 없었던 작은 소년은 바깥으로 나가 눈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 때 그 소년이 무릎을 꿇은 그 자리에 곧바로 붉은 잎들이 달린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났다고 한다. 소년은 그것을 교회로 가져가 아기 예수님께 선물로 드렸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멕시코의 한 마을에 한 착한 소녀가 살았다. 소녀는 병든 어머니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산에 올라가 약초를 캤다. 어느날 소녀는 절벽사이에 돋아난 약초를 캐다가 그만 굴러 떨어졌다. 소녀의 흘린 피로 주변의 하얀 꽃이 빨갛게 물들었다. 소녀의 정신이 희미해 질 때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저 피 묻은 꽃을 꺾어 어머니에게 갖다 드려라” 하셨다. 그 순간 소녀는 힘을 얻고 일어나 그 꽃을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렸다. 어머니는 그 꽃을 보시고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포인세티아라는 이름은 멕시코 주재 초대 미국대사이며 탁월한 아마추어 식물학자인 ‘조엘 로버트 포인세트’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그는 1828년에 멕시코에서 아름다운 식물을 발견하여 미국으로 가져왔고, 미국에서는 그를 기념하여 이름을 '포인세티아'라고 불렀다.
포인세티아의 붉은 잎은 강렬한 주님의 피를 연상시켜 준다. 사람들이 성탄절에 포인세티아로 교회와 가정을 장식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상징하는 십자가의 보혈의 희생을 연상시켜 주어서 일까? 성탄의 계절에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이 넘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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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2011 부유한 자의 하나님, 가난한 자의 하나님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 개인도 어렵고, 가정들도 어렵고, 회사들도 어렵고, 나라 경제도 어렵다. 잘살던 나라들이 휘청거린다. 성도들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경험하고, 교회들도 역시 어렵다. 지금 미국의 월스트리트 앞에서 몇달째 계속되는 데모나, 전세계적으로 파급되어지는 금융가 앞에서의 가난한 사람들의 데모는 빈부의 격차에 대한 항의이다. 불과 1%의 사람들이 부를 좌지우지하는 부조리에 대한 항의이다. 우리들의 경험하는 어려움이 우리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종교성과 경제적 불평등과 관계된 몇가지 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토빈 그란트는 크리스쳔 투데이에 실린 "Religion and Inequality God Hand-in-Hand " 글을 통해서 종교성와 빈부차의 관계를 보고했다. 최신 자료들을 분석한 바에 의하면 종교성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나라가 더 부유해 지고 잘살게 되어지면, 부유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들보다 더 세속적인 사회로 바꾸어져 간다. 예외적으로 미국은 가장 잘 사는 나라이면서 가장 종교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최근에 보고된 일련의 조사들은 미국에 빈부의 격차가 매우 심각하다. 물론 온 세계가 빈부의 격차로 인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미 UN 에서도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빈부의 격차에 대한 경고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종교성에 대한 분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어려움의 계절을 잘 살아가야 하나? 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어려움의 계절에서, 그리고 우리가 사는 경제적 불평등의 사회에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나누어 주는 생활'을 해야한다.
우리 자신이 어려움의 계절에 살고 있기에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대하여 둔감하여 지기 쉽다. 나의 가정이 어려우니 교회에 대한 헌신과 헌금도 인색해 지기 쉽다. 주변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나 멀리 선교의 현장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기 쉽다. 옥합을 깨는 마리아의 헌신을 비난하는 제자들에게 마리아를 옹호해 주시던 예수님은 "가난한 자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거니와" 하셨다. 물론 우선 순위를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항상 우리 주변에 있으니까 하고 무관심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역설적으로 항상 함께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리아와 같은 사랑을 보이라'는 뜻은 아닐까?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 나보다 더 못한 가난한 사람들을 두심으로 우리의 하나님 사랑을 항상 테스트 하신다는 의미는 아닐까?
진정한 축복된 생활은 상대적인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평보다는 감사의 생활이다. 나눔의 생활이다. 여호와이래의 축복을 주신 부유한 자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들을 "복의 근원"으로 살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진정한 복의 근원이시에 우리도 복의 근원의 생활을 할 수 있다. 여호와 이래의 부유한자의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도 우리를 통해서 가난한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뜻은 아닐까?
연말을 맞이하여 풍성한 감사, 큰 소리의 감사, 긴 감사, 성전에 이어지는 감사를 통해 큰 나눔, 적은 나눔의 생활이 나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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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2011 리더쉽 불변의 법칙
존 맥스웰은 <리더쉽 불변의 법칙>이란 저서를 통해서 변치않는 리더쉽의 원리를 설명한다.
[] 리더십에 관한 잘못된 인식은 무엇인가?
1) 리더십은 관리이다. 구성원들이 리더를 따라오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리더십에 관한 것이라면, 관리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 리더는 기업가이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기업가들 모두가 사람 문제를 다루는 데 유능한 것은 아니다.
3) 리더십은 지식이다. 머리가 좋다거나 교육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 반드시 리더십 역량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4) 리더는 개척자이다. 또 다른 오해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사람이 리더라는 생각이다.
5) 리더십은 지위이다. 스탠리 허프티(Stanley Huffty)는 이렇게 말했다. “지위가 리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리더가 지위를 만든다.”
[] 리더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
1) 성품 -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진정한 리더십은 언제나 내적 성품에서 출발한다.
2) 관계 - 당신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를 따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리더이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인간관계의 망이 넓으면 넓을수록 리더십의 잠재력은 커진다.
3) 지식 - 당신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새로운 조직을 맡게 될 경우 첫 번째로 해야 할 것은 조직을 리드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4) 직관 -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능력이 관리자와 리더의 주된 차이 중 하나이기도 하다.
5) 경험 - 당신은 어떤 경험을 했는가? 과거에 리더로서 경험한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구성원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가능성도 높아진다.
6) 과거의 성공 - 당신은 어떤 성취를 했는가? 지금까지 리더로서 뛰어난 성과를 올려왔다는 성공적인 경력보다 구성원들에게 더 큰 신뢰를 주는 것은 없다.
7) 능력 -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구성원들은 리더가 조직을 이끌어 승리를 이뤄낼 수 있는가를 알고 싶어 한다.
끝으로 존 맥스웰 박사가 자주 사용한 리더십의 격언은“자신이 리더라고 생각하는데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산책일 뿐이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그들은 당신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정한 리더가 아니다. 리더쉽은 영향력 그 자체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리더쉽의 최고의 자질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꿈꾸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일 것이다. 이번 선교회 총회를 통해서 세우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새 일을 이루어 가실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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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2011 이슬람의 종교 핍박
이란에 종교의 자유가 존재 하는가? 이슬람권 나라에서의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지만 그들의 종교의 자유는 오직 이슬람을 믿을 수 있는 자유이다. 다른 종교를 믿는 자유는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 유세프 나다르카니 목사는 이란의 가정교회를 섬기는 34세의 젊은 목사이다. 그는 어렸을 때에 복음을 받아드리고 목사가 되었다. 그는 2009년도에 체포되어서 지금까지 수감 중이다. 그의 죄명은 이슬람을 믿지 않는 ‘배교’ 와 모슬림들에게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도 옥살이를 했다. 사실 그는 배교한 것이 아니다. 그는 15세 이전에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모슬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그의 아버지가 모슬림이니까 모슬림 전통을 이어 받았고 따라서 그는 배교자 라고 주장한다.
이란의 최고법원은 하급법원으로 재심하도록 했다. 하지만 재심은 다시 재판하는 것이 아니고 판사 앞에서 기독교 신앙을 부인하면 사형을 면하지만 기독교를 신앙의 취소하고 이슬람으로 되돌아 오지 않으면 사형시킨다는 내용이다. 나다르카니 목사는 기독교 신앙을 버리기를 거부했다. 이제 사형집행만 기다리는 중이다. 전세계가 이 사건을 주목하고 사태의 향방을 주목하고 있다.
이슬람권의 나라들에서 배교 apostate 는 이슬람 종교를 떠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죄명이다. 그들의 규범인 샤리아에 의하면 배교를 하면 사형시키라 명령한다. 이것은 수니의 4대 종파는 물론이고 시아크의 주종파에서도 마찬가지로 남자가 배교를 하면 ‘반드시’ 사형을 시켜야 한다. 여자가 배교하면, 어머니가 딸이 배교했다고 인정하면 사형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감옥에 가두어 뉘우칠 때까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하루에 5번씩 매를 맞는다. 이것은 그들의 명령이고 법률이다. 설사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개종한 사람은 ‘배교자’로 규정되고 끊임없이 위협과 협박을 받는다. 배교자의 가족과 자녀들 마져도 위협을 받는다. 여자들은 강간을 당할 것으로 위협하고 폭력을 당하고 생명을 위협을 받고있다. 이것은 이슬람권내 있는 성도들의 경험하는 매일의 현실이다. 이제는 이 법률을 아프리카에서도 시행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슬람을 떠나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 대한 위협은 매우 실제적이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도, 시리아에서도, 이란에서도 배교자에 대한 형벌, 이슬람법 샤리아 Sharia의 미명 아래 시행되고 있다. 비록 그들이 미국에 살고 있어도 개종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주거지를 옮기며 살고 있다고 한다.
성도들의 고난 당할 때의 주님은 어떻게 하시나? 스데반은 순교 당할 때에 하늘문이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 부활하신 서 계신 예수님을 바라본 스데반은 믿음을 지켰고 또한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성도들이 고난 당할 때에 주님은 앉아 계시지 않고 서서 계심을 보여 주셨다. 주님은 이 사건 역시 주목하고 계심을 믿는다. 주님이 서서 계신 것 처럼 우리도 나다르카니 목사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서 기도하자.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이슬람의 핍박 속에서 생명을 걸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신실한 성도들을 위한 성령님의 효과적인 도움을 간구하자.
(김혜천 목사의 미주크리스쳔신문 컬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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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2011 그리스도로 인한 변화
그리스도와 초대교회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능력이었다. 그리스도는 사회 계층의 피라미드 하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존중하셨다. 또한 그들의 편에 드셨다.
그리스도는 여자들을 귀하게 여기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 가운데 여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복음서에는 그들에 대하여 파격적이며 특별하게 언급하는 말씀들이 종종 발견된다. 요한을 제외한 다른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버리고 도망했지만, 십자가 밑에 나아가서 끝까지 예수님을 바라본 사람들의 대다수는 여자이었다. 부활 후에 주님께서 제일 먼저 나타내 보이신 사람들도 여자들이었다. 디모데 전서는 여자 직분자들을 말한다. 고린도 전서는 결혼생활의 권익을 보호한다.
또한 당시의 노예들도 보호를 받았다.
바울은 빌레몬서에서 자신의 친구들에게 사랑과 존경으로 노예들을 대하라고 권하고 있다. 잘못을 용서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노예를 동역자로 여기라고 권한다. 당시의 통념으로는 결단코 받을 수 없는 파격적인 가르침이었다.
사회의 벽이 허물어졌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열과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종과 성별과 사회적인 계층의 차이를 초월한다.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이고, 자매이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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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2011 기술의 황제, 스티브 잡스의 애플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을 팝의 황제이라고 부르는것 처럼 애플의 창시자이며 CEO이었던 스티브 잡스를 기술의 황제라고 말한다. 기술의 황제인 스티브 잡스이었지만 끝내 암과의 투병을 이기지 못하고 5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새로운 제품을 내 놓을 때마다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독특한 매력적인 발표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개인용 PC 의 세계를 여는 애플 컴퓨터로 부터, 맥켄토시, 그리고 현대의 iPod, iPhone, iPad, iCloud로 전 세계의 문화를 바꾸어 놓았다.
애플이 처음 소개 되었을 때에 그 회사의 로고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왜 회사 이름이 애플일까? 그것도 온전한 사과가 아니라 한 입을 베어 물린 사과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애플의 로고에 스티브 잡스의 철학과 신학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한 입을 물어서 입 자국의 난 사과는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생각하게 한다. 서양사람들은 선악과를 사과라고 생각한다. 남자의 목에만 있는 아담스 애플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다가 씨가 목에 걸린 흔적이라고 말한다. 이 베어 물린 사과는 컴퓨터의 세계에 담겨진 수많은 정보와 지식의 비밀들을 상징하는 선악과의 의미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한 입 베어 물린 사과는 아담과 이브가 베어 물었던 선악과, 그리고 그 선악과는 선악을 알게하는 지식의 사과이다. 애플의 로고를 보면, 이브가 한 입 베어 물고 난 사과를 아담에게 건네주는 것이 연상된다. 과연 스티브 잡스는 창세기에서 표현되는 지식에 대한 갈망을 이해하고 그것을 애플을 통해서 상업화 한 것일까?
크리스쳔 작가인 Andy Crouch 도 애플의 로고를 보고 “잡스는 인간의 타락과 실패의 원형인 배어물린 과일 bitten fruit 을 약속과 진전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정말로 애플 컴퓨터는 사단이 선악과를 한입 배어 먹음으로 ‘하나님 같이 되는’ 지식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유혹한 것을 처럼 클릭 하나로 지식과 놀이의 인터넷과 정보세계로 연결되게 한다. 디지탈 세계에 깊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연결된다. 이것이 스티브잡스가 우리에게, 우리를 위하여, 우리처럼 한 일이다. 상술의 세계가 신비의 세계로 바뀌는 가장 깊은 인간의 갈망을 자극하는 능력이었다.
현대의 기술과 문화를 정통한 분석가인 Kurt Vonnegut 은 이것을 잘 이해했다. Vonnegut가 1994년 시라큐스 대학 졸업식에 연설 하는 가운데 “인터넷 첫시대는 Generation X 가 아니고 처음 인터넷 세대는 Generation A” 라고 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의 세대이라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것이 ‘A’이야기의 시작이다. 지식에의 추구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갈망 중의 하나이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더 알기를 갈망하는 존재이다. Susan Brook 은 “스티브 잡스의 신학, The theology of Steve Jobs: The byte out of the Apple” 라는 글에서 스티브 잡스는 “더 알기 원함이 인간됨의 의미라는 사실을 알았다” 라고 했다.
물론 우리는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순간들을 알지 못한다. 기술의 황제 스티브 잡스가 과연 어렸을 때에 들었던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발견하고 회개하고 돌아왔을까? 아니면 힌도교의 카마의 세계의 망상 속에서 윤회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떠났을까? 그가 남긴 기술혁명의 열매들을 보면서 감탄하지만 한편 하나님을 위하여 드린 열매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라고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아쉬움이 시디신 사과맛 처럼 입 안 가득 배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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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2011 성경시대의 패션
지난 주 오바마 대통령의 영부인이 입었던 우아한 드레스가 한국의 2세 디자니어가 디자인 한 옷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현대에 있어서 패션은 시대의 감각을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의사 표현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성경시대에도 패션이 있었을까? 성경에 보면 특별한 의상 혹은 독특한 매력으로 남다른 주목을 끈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 몇을 열거해 보자.
세례 요한은 낙타 털옷과 가죽 띠를 입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마3:4).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소의 멍애 모양의 목걸이를 만들어 착용을 했다 (렘27장). 다윗의 아들이며 나중에는 반역을 행한 압살롬은 복슬 복슬한 긴 머리카락으로 유명했지만 결국은 긴 머리카락으로 인해서 죽게 되었다 (삼14:25-26). 출가하지 않은 공주들은 채색옷으로 단장했다 (삼하13:18).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아하수레로 왕의 비빈이 되려면 12개월 동안 미용수업과 몸 단장 과정을 마쳐야 했다 (에2:1). 이스마엘 부족은 금 귀걸이를 착용한 것으로 유명했다 (삿8:24). 야곱의 아들 요셉은 특별한 채색옷을 입었다 (창37:3).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가죽옷을 입었다 (창3:21). 솔로몬의 신부 술라미는 은장식이 달린 금 귀걸이와 보석으로 단장했다 (아1:10-11). 한나는 어린 사무엘에게 해마다 새 옷을 지어 주었다 (삼상2:19).
성경에 나오는 패션을 가장 중시했던 사람은 악한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 아닐까 한다. 악한 이세벨은 자기가 죽던 그 날에도 눈화장을 하고 머리를 새로 꾸몄었다 (왕하9:30). 바리새인들은 소매에 술을 길게 늘여 뜨려서 자신의 경건함을 과시하고자 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패션은 무엇일까? 먼저 자신의 죄를 안타깝게 여기며 재 위에 앉아서 머리에 재를 뿌리면서 회개하는 베옷을 입은 사람이 아닐까? 회개하는 사람들은 단장품을 제거하고 (출33:4-6) 굵은 배 옷을 입고 슬퍼했다.
하나님이 우리가 입기 원하는 옷이 있다. 그 옷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옷이고 의의 겉옷이다 (사61:10). 바울은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라 (딤전2:9) 고 했다. 베드로도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라고 (벧전3:3) 했다. 베드로는 역시 거룩한 부녀들은 신앙 때문에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라 (벧전 3:5) 고 권했다.
주님은 교회는 성도들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처럼 단장해야 한다고 하신다 (계 21:2).
주님앞에 서는 옷은 흰옷이다. 최고의 패션은 흰옷을 입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구원받은 흰옷입은 무리를 묘사한다. 어떻게 흰옷을 입을 수 있는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7:9)”. 과연 주님이 보실 때에 나의 패션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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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2011 역설 속의 진리
성경 말씀 가운데 역설적인 표현이 많이 나온다. 주님께서도 역설적인 표현 중에 진리를 담아서 말씀하시곤 했다. 역설 속의 진리는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인상을 주면서 깨달음과 충격으로 다가 온다.
그 예를 보면, 잠언 11:24은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하신다. 얻기 위하여 준다 는 것은 세상에서 부를 얻는 방법이 아니다. 역설 속의 진리이다.
갈2:20 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
눅17:33 은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얻기 위해서는 잃어야 한다.
고전3:18 “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미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다스리기 위해서는 섬겨야 한다.
마 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높아지지 위해서는 낮아져야 한다.
마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으뜸이 되고자 하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고후6:4, 8-10 에 보면 진정한 기독교인의 9가지 역설이 나온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 (1)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2)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3)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4)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5)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6)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7)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8)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9)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빌립보서를 묵상하면서 읽은 책 가운데 A. W. Tozer 가 쓴 The Root of Righteousness 라는 책에서 “진정한 기독교인은 이상한 존재”라고 선언한다. 정말로 그렇다. 우리는 한번도 보지도 못한 분을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느낀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분을 친밀하게 체험하고, 다른 사람의 이루어 놓은 공로와 공적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충만하게 가득하기 위해서는 비워야 하고, 바른 것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일어서기 위해서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하고, 가장 약할 때에 가장 강하다고 믿는다. 가장 불행하게 느낄 때에 가장 행복하다. 죽을 때에 살게 되고, 갖기 위하여 버리고, 소유하기 위하여 나누어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모든 지식을 버릴 때에 모든 것을 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함께 하심으로 가능하다.
그렇다고 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힘든 과정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의 어려움과 역경은 도리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보게하고, 체험하게 하고, 누리게 하는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주시는 역경 속의 승리를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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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10가지 조언
우리가 가장 어렵게 느끼고 고민하는 것이 복음을 어떻게 나눌까 하는 것이다. 복음에 대하여 긍정적이거나 수용적이지 않는 환경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켈리 트루질로 는 직장과 사업장과 생활 속에서 어떻게 예수를 증거할 수 있음을 제안한다.
1. 직장의 동료와 우정이 깊어지는 동안에 그들이 자기의 삶을 나눌 때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듣고 또한 질문하라. 적절한 시기에 또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말하라. 물론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2. 매일 출근하면서 혹은 운전하면서 하나님께 직장과 사업체가 선교현장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3. 자신의 믿음의 중요성을 숨기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을 거부하라. 기회가 되면 교회에서의 당신의 역활, 기도, 성경, 그리고 당신의 삶에 있는 성도 공동체의 중요성을 나누라. 당신의 신앙을 통해서 기쁨과 의미를 발견하도록 하라.
4.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라. 교회와 목장이 행하는 비공식 행사 혹은 봉사 활동에 초청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기회가 적절할 때에 대화 중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임을 표현하라.
5. 점심시간에 성경공부나 기도모임을 참석하던지 아니면 시작하라.
6.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진실함과 성실함을 보이라. 게으르거나 능력없는 사람이 아니라 동료들이나 상급자가 당신의 확실한 직무수행을 의존하는 사람이 되라.
7. 직장동료와 기도의 동지를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만나고 어떻게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살것인지를 의논하라. 특정한 직장 동료를 위해서 기도하라.
8. 믿지않는 동료와 관계가 깊어지면 점심이나 저녁에 영화나 커피등의 교제에 초청하라. 직장 바깥에서의 만남은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서로를 더 가깝게 알도록 도와준다. 신앙과 복음에 대하여 더 깊은 대화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해 준다.
9. 관심이 있는 직장동료를 다른 그리스천 친구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나, 소그룹 목장이나, 교회 행사에 초청한다.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의 절기에 적당한 기회를 마련하자.
10. 성령의 인도하심에 예민하라. 믿음에 대하여 말해야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확신하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께 확인하라. 성령님께서 적절한 인도하심을 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두신 것이다. 당신의 직장과 사업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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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삶과 실패한 삶
C. Charles Allen은 예수님의 생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의 성공의 기준으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 가운데서 가장 실패한 사람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그는 친구들과 추종자들을 실망시켰다. 그의 가족들은 그를 소망이 없는 망상가로 취급했다. 그는 일한 댓가로 봉급을 받지도, 자신을 위해서 돈을 저축하지도 않았다. 그가 사는 동안에 집 한채를 소유하지도 않았다. 그는 우리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높은 지위, 권세, 새 집, 새로운 차, TV 셋트, 학위등등을 가지지 않았다. 그가 성취한 것이라고는 십자가 위에서의 외로운 죽음의 고통이었다. 젊은 사람으로 이런 비참한 최후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그를 주님으로 부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성취한 종류의 성공을 갈망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세상적인 기준에서 실패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구원을 이루고, 온 인류의 소망이 되셨다. 구세주이시다. 우리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생활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다. 성공한 삶이다.
땅에 보물을 쌓는 사람들은 성공같지만 실패한 인생을 산다. 돈이 보물이라고 믿는다. 돈을 숭배한다. 사람들이 돈에 대하여 착각하는 것이 있다. 돈을 성취로 생각한다. 돈을 자유로 생각한다. 돈이 존경을 얻는다 생각한다. 돈이 권세고 힘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땅에다가 보물을 쌓는다. 하지만 땅에다 보물을 쌓으려고 하고 창조주를 생각하지 아니한 한 부자를 보고 “어리석은 자여” 라고 하셨다. 그는 땅에 보물을 쌓으려 함으로 실패한 인생이 되었다. 땅에 보물을 쌓는 생활은 결단코 행복하지 않다.
성공한 삶과 실패한 삶의 차이는 보물을 어디에 쌓아 두는가로 점검할 수 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인생이다. 따라서 성공한 사람이다. 보물을 땅에 쌓는 사람은 사람의 보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성공이 아니다. 따라서 실패한 인생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가 보물을 어디에 쌓아 두는 것과 관계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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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2011 무슬림을 위해 기도합시다 엡2:4-10
무슬림이 몰려오고 있다. 세계 15억이 모슬림들이 자신들의 구원을 위하여 한달간 금식하며 기도하는 라마단 기간이다. 이렇게 많은 무슬림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계절로 삼기를 원한다. 우리가 무슬림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무슬림들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시기 때문에 (4절)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숭배하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무슬림 중에서도 구원하실 사람들이 있다 (요3:16).
이슬람은 세계를 이슬람화 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포교활동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 세가지 전략이 있다. 1) 다와 라고 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을 믿도록 노력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2)지하드 로 성전이라고 부른다. 모슬림을 대항하는 모든 세력을 향한 전쟁이다. 3) 또한 모스크 설립을 통해 전 세계에 전략적 선교기지 구축하는 전략이다. 세계 곳곳에 엄청난 모스크가 세워져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슬람이나 유대교나 기독교나 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냐 주장한다. 정말로 그런가? 기독교와 무슬림 신앙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많다. 1)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데, 무슬림은 코란을 믿는다. 무하메드는 가브리엘로 부터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을 받아서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일부를 믿는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들은 부인한다. 2)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데, 무슬림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중에 하나로 믿는다. 성경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시다 라고 증거한다 (요10:30). 무슬림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이름 (이사)도 백번이상 나온다. 하지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다. 단순히 메신저에 불과하다. 이들은 무하메드를 최고의 선지자, 마지막 선지자로 믿는다. 3)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 을 믿는데, 무슬림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부인한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진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이다. 무슬림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바로 천국으로 갔다고 한다. 구원자되심을 부인한다. 4)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선의 근원으로 믿는데, 무슬림은 알라가 선과 악의 근원으로 믿는다. 무슬림이 믿는 알라는 변덕스럽다. 알라의 뜻은 절대적이고 모든 인생은 다 인형들이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그들이 믿는 알라는 고대의 달숭배과 관계가 있다. 이슬람의 상징이 초생달이다. 5)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은 사랑으로 믿는데, 무슬림은 알라에게 사랑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기독교의 가르침의 핵심도 사랑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지만 코란의 알라를 설명하는데 사랑이란 말은 한번도 사용하지 않는다. 6)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믿는데, 무슬림은 알라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신성 모독으로 생각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도록 초청하신다. 하지만 무슬림들이 믿는 알라는 알수 없는 존재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한다 (막1:1). 7)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죄인으로 태어남을 믿는데 (1절), 무슬림들은 원죄를 믿지 않는다. 8)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음을 믿는데 (8-9절), 무슬림은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다. 무슬림들은 구원받기 위해서는 5가지 행위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가) 무슬림의 신조는 알라는 유일한 신이요 무하메드는 알라의 선지자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나) 구원받기 위해서느 하루에 5번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한다. (다) 그들은 수입의 2.5%으로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 (라) 한달간의 라마단 금식을 해야 한다. (마) 하지 라고 하는데 일생에 한번은 메카에 순례를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9)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인 폭력을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믿는데, 무슬림들은 종교적 폭력은 무하메드의 가르침을 이루는 길로 믿는다. 이들은 지하드에 참여하여 다른 사람들을 죽이면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자살폭탄등의 테러행위를 권하는 근거이다.
감사하게도 최근에 많은 모슬림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고 있다. 모슬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이들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주님이 오시는 날 함께 주님을 맞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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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2011 흰 돌 (계2:17)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이 승리한 버가모 교인들에게 두번째로 주실 것은 새 이름이 기록된 흰돌이다. 여기서 흰돌이 무슨 뜻일까? 기본적으로 생각할 것은 흰색과 새로운 것이다. 이것은 장차 천국에서 맞게 될 모습을 상징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1:14; 3:4,5,18; 4:4; 6:2,11; 7:9,13,14; 19:11,14; 20:11; 21:1,2,5).
이 '흰 돌'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이다. (1)혹자는 '흰 돌'을 이방의 미신 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황제 숭배 사상과 관련있는 것으로 해석한다(Moffatt). (2)혹자는 만나가 하늘에서 내린 것처럼 하늘에서 내린 흰 돌로 본다(Rist). (3)혹자는 당시의 풍습에서처럼 재앙을 막기 위해 사용한 흰 돌에다 알 수 없는 이름을 새겨 넣은 것으로 본다(Holtz- mann). (4)혹자는 재판 과정에서 배심원들이 사용한 무죄 표시의 흰 돌로 해석한다(Clarke, Bengel). (5)혹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대제사장의 흉패에 붙인 보석으로 본다(Trench). (6)혹자는 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우승의 기념으로 새겨 주었던 흰 돌로 본다(Zahn). (7)혹자는 연회장에서 초대의 표시로 사용한 흰 돌로 본다(Plumptre, Johnson). 이 가운데서 여섯번째와 일곱번째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흰 돌'은 하나님 나라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킨 승리자에게 주는 상급이며,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케하는 상급이다.
팔레스타인의 관습 하나가 생각난다. 한 남자가 자기 부족이나 다른 부족의 젊은 여인을 건드리면 사형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위자료를 지불하면 죄인은 방면된다. 이렇게 방면된 죄인은 항상 흰 천막에 살아야 하고, 흰 낙타를 타야하며, 천막 앞에는 항상 큰 흰돌을 갖다 놓아야 한다.
이것은 아무도 그를 해칠 권리가 없음을 가르키는 것이다. 용서받은 것이다. 죄의 값은 지불되었으며 전혀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사람 처럼 된 것이다. 그래서 흰돌은 용서와 변호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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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2011 건강을 위한 투자
이번 주간에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했다. 모처럼 건강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도 혹은 목사님들이 만나도 빠지지 않는 대화의 주제는 건강이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들을 때마다 늘 마음에 부담이 있었다. 운동을 해야 할 줄은 아는데 그동안 건강을 위한 투자를 전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동해야 한다는 말은 의사 선생님도, 성도님들도, 식구들도, 심지어는 아내로 부터도 늘 듣는 말이었다.
이번 주간에 매월 모이는 뉴욕노회 동시찰모임이 있었다. 모처럼 시찰내 교회들의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함께 모여서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다가 또 다시 운동이야기가 나왔다. 건강을 위해서 시간을 내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마침 모임장소가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함께 우리 교회로 와서 탁구를 하기로 했다. 솜씨는 좋지 못하지만 모처럼 땀을 흘리는데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앞으로 건강을 위해서 매주 하루를 정해서 아침에 모여서 한두시간 함께 탁구를 하기로 의견이 모여졌다.
주중에 성도님들과 함께 모인 시간에 내가 이번 주간에 3일동안 운동을 했다는 자랑을 했더니건강을 위해서 주중에 함께 저녁에 모여서 탁구를 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또한 오장로님이 롱아일랜드 지역에서 우리에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Cold Spring Harbor State Park 이 등산하기에 좋다고 소개해 주셨다. 그래서 토요일 새벽기도 후에 함께 산행을 하기로 했다.
토요일 새벽기도후에 몇명이 함께 모였다. 오장로님의 인솔아래 산에 올랐다. 처음에는 산을 올라본 적이 하도 아득해서 힘들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언덕을 넘어서 구비구비 산길을 걷는 기분이 너무도 좋았다. 코스가 잘 조정되어서 힘이 많이 들지도,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않은 초보인 나에게는 참으로 적합한 코스이었다. 힘들것 같았던 산들을 넘어서 목적지에 도착해서 기념촬영을 했다. 돌아오는 걸음은 더 가벼웠다. 파크 앞에서 흘러나오는 그 유명한 생수를 마셨다. 인근의 바닷가로 가서 준비해 간 갓 나온 따끈 따끈한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서 복숭아와 함께 먹었다. 꿀맛이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지금까지 건강을 지켜주심과 사랑하심에 대한 감사 이었다.
단 하루의 산행으로 훨씬 더 건강해진 것 같은 기분이다. 말로만 듣던 파크에 와서 마침내 산행을 했다는 기쁨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친교도 참으로 좋았다. 이렇게 좋은 곳을 우리 주변에 허락해 주셨는데 그동안 너무도 소홀히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번 주간의 건강을 위한 투자가 한주간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주신 몸을 건강하게 간직함이 주님을 기쁘시게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많은 일들을 감당할 기본이 됨을 깨닫는다. 그리고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으로 건강한 가정과 건강한 교회를 세움이 주님을 위하는 길임을 확신한다. 앞으로 주님의 일을 더 잘 감당하기 위한 건강을 위한 투자가 더 많이, 더 자주, 모두 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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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2011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J. 모리스가 쓴 글에 링컨 대통령에 대한 일화가 있다. 남북 전쟁이 한창일 때에 링컨 대통령의 한 친구가 대통령을 위로하려고 한 마디했다. “링컨 대통령님, 주님이 우리 편이기를 바랍니다.” 그 말에 링컨은 친절하지만 다소 단호한 말투로 그건 자신의 희망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모두들 놀랐다. 링컨은 다시 말을 이었다. “주님은 언제나 올바른 편에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와 우리 국민 모두가 주님 편에 서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계획에 들어맞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의롭고 언제나 바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뜻은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반드시 성취된다. 성경의 예언의 성취가 증명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 인생의 행복을 누리고 우리의 인생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존재 이유도 바로 그분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시대에 이곳에 있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계시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최고의 존재의 목적이고 최우선의 사명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커다란 임무는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라는 주님의 기도를 충족시켜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생활은 어느 형편에서도 승리하는 비결이다. 우리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현재의 상황으로 측정한다. 내가 잘되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마음의 생각을 이루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하는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생활이다. 하나님을 뜻을 이루기 위해 가는 여정에서 부하게 되는 것도, 가난하게 되는 것도,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도, 낮아지는 것도, 지도자로 세움을 받는 것도, 아니면 섬기는 것도, 왕좌에 오르는 것도, 감옥에 가는 것도 모두가 성공이다. 승리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진정한 인생의 성패를 측정하는 척도는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부귀 영화가 아니다. 나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는가 아니면 이루지 못했는가 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는 win-win 하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생활이야 말로 최고로 잘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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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2011 거침없는 한류 케이팝 시대
우리 조국 한국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세계 8대 경제대국안에 들어가고, 세계 선진국 G20 모임을 주관한다. 한국 출신의 유엔 사무총장이 재임되고, 한국의 자동차가 세계를 누빈다. 하지만 영국의 BBC 방송이 보도한데로 한국을 대표하는 것은 삼성, LG, 현대등의 대기업들이 아니고 Kpop 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케이팝 K-Pop 은 한국의 팝뮤직이다. 케이팝은 Korean pop 혹은 Korean popular music 이라고 한다. 케이팝은 전자, 힙팝, 팝, rock 과 R&B 가 함께 어울러진 퓨전 음악이다. 지금까지의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자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좋은 방송국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소셜 네트웍의 발달로 이제는 하나의 마켓만을 가지게 되었다. 국경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는 글로발 마켓이다. 한국의 케이팝이 프랑스 공연에 일으킨 센세이션으로 온 세계가 놀라게 되었다. 일본과 동남아에서 시작된 한류가 이제는 유럽에도 넘치게 된다. 한국 대중가요에 맞추어서 프랑스 젊은이들이 한국말로 노래하고 춤을 추는 클럽들이 성행을 한다. 유럽의 방송들도, 프랑스 공용방송도 신년 특집으로 2시간에 걸쳐서 한국을 소개했다. 인터넷의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한 확산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페루, 브라질, 멕시코, 각 나라에서 케이팝 열풍으로 뜨겁다. 인터넷에서 한국 가수들의 공연을 요청하는 온라인 사인운동이 등장하고, 한국을 단체로 관광하는 계획들도 속속히 세워지고 있다. 케이팝이 가장 뜨거운 곳은 동남아이다. 아시아 시장에 히트곡 50개곡 중에 46개가 한국 케이팝이다. 아시아의 전 시장과 세계를 석권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젊은 자녀들이 음악으로 세계를 재패해 나간다. 폭팔적인 한류의 열풍으로 선교사님들도 간접적인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인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로 바꾸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두가지 기도제목이 생긴다. 과연 케이팝 등을 통한 한류 열풍이 복음증거의 통로의 확장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케이팝과 같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고 가시적인 미디어물에 익숙한 우리의 자녀들에게 찬양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Kpop 의 확장을 바라보면서 다음 세대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더 많은 길들이 열려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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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2011 성령님의 상징
성경은 하나님이신 성령님의 고유적인 명칭 외에 상징적적인 명칭을 통해서 언급한다. 성경은 상징적으로 설명함으로 제한된 지혜를 가진 인생들에게 성령님의 본질과 특성과 사역을 인식시켜 주신다. 기억할 것은 이런 명칭은 상징일 뿐이다. 성령님께서 “비들기와 같은 형체를 지녔다” 라고 여겨서는 안된다.
1. 물 (요7:37-39) = 성경은 성령님을 생수에 비유한다. 중동에서 물은 생명과 같이 귀한 것이다. 생수는 귀했고 이것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건 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성령님은 생명의 공급자이고, 성결의 주도자 이시다 (요3:5; 딛1:5)
2. 불 (행2:3) = 불은 고대부터 종교적인 집회나 국가적 행사에 필수로 등장한다. 원시인의 축제부터 올림픽까지 불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상징이었다. 로마시대에는 신년이 되면 신전에서 붙인 성화를 집에 나누어 주었고, 신년이 되면 왕이 온 신하의 집에 불을 보내는 의식을 하곤 했다. 오순절의 강림하신 성령께서 불의 혀 같이 갈라져서 각 성도들의 위에 머무셨다는 의미가 분명해 진다.
3. 바람 (요3:8) = 바람은 성령의 고유한 명칭이다. 신약에서는 370회 나타난다. 요3:8은 바람으로 쓰이기도 했다. 바람처럼 성령님은 보이지 않고, 무소 부재하고, 신선한 생명의 공급자이시지만, 불신자들에게는 태풍같이 심판자이심을 보인다.
4. 기름 (요일2:27) = 성령님의 거룩성을 표현한다. 구약시대의 왕, 선지자, 제사장 들이 기름부음을 받았다 (출29:29; 30:30). 성령은 거룩한 사명을 주고, 지혜를 주고, 그리스도만을 섬기는 자로 만드신다.
5. 비 (시72:6) = 비는 모든 생명체를 발전, 결실 시키는데 필수적이다. 비가 없으면 생명이 살수가 없다. 비는 하나님께서 인생을 사랑하심으로 주시는 자연의 은총이다 (마5:44). 비가 내려야 살고 열매가 맺힌다.
6. 비들기 (요1:32) = 그리스도께서 구세주 이심을 확증하는 성령님의 사역과 관계된 명칭이다. 비들기는 순결하고 정결한 새로 제물로 쓰이기도 했다. 복음을 전해주는 새가 비들기이다 (창8:11). 성령님은 인생으로 그리스도가 바로 예언된 죄없으신 구주이심을 증거한다 (롬1:3-4).
7. 술 (행2:13) = 엡5:``18에도 성령충만을 술취함과 비교한다. 술을 마시면 잠시적으로 용기가 생기고, 즐겁고, 마음이 넓게 쓴다. 성령님은 일시적인 혹은 인위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 (롬14:18)’을 성도들에게 주시는 분이시다.
8. 인 (엡1:13) = 도장은 사람의 권리를 나타내는데 사용했다. 성도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계시기에 확신 할 수 있다 (롬8:9). 보증이기도 하다 (고후1:21-22).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고 확신시켜 주신다.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성령님을 새롭게 의지하고 인도하심을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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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2011 가장 중요한 단어 : 관 계
영어에 있어서 고유명사를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단어는 관계이다. 아마도 사랑이 아닌가 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 관계는 선로이다. 그 선로 위에 사랑이 굴러간다. 사랑은 관계를 통해서 움직인다. 사람의 가장 깊은 열망을 만족시키는 것은 어떤 사람과의 관계이다. 우리의 생애에 위기나 어려웠던 순간들을 생각해 보라. 그중에 대부분이 깨어지거나, 긴장되거나, 망가진 관계들에 의하여서 조성된 것이다. 파탄한 사업, 분열된 가정, 금이 간 우정들은 깨어진 관계들이다. 이것이 도시와 국가와 국제간의 문제에까지 확장해 간다. 모든 범죄와 전쟁도 잘못된 관계들로 빚어진다. 반면에 즐거움과 행복의 멋진 시절을 생각해 보라. 이 모든 것들도 관계들로 부터 온다. 부모와 옳바른 관계를 가질 때에 정신적 정서적 온전한 상태를 이루며 결혼을 하고 행복한 자녀와의 관계를 이루어 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혼도, 전쟁도, 고용주와 고용인의 사이의 논쟁도, 노동자와 경영진의 다툼도 결코 일어나지 않게 된다. 관계의 문제를 해결해 보라. 그렇게 하면 난처한 문제들이 풀리게 된다. 옳바른 관계는 견고한 가정생활, 안정된 가정, 성공적인 사업, 섬기는 교회, 훌륭한 정부, 강력한 국가를 생산한다. 사회가 관계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중단할 때에 퇴폐적인 것이 된다. 태도는 거칠고 천박스럽게 된다. 평범한 예절도 망각해 버린다. 마음은 냉냉해지며 감사하는 표현 조차 잃어 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관계를 아름답게 하는 기초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구원자 예수와의 관계는 우리에게 확신과 자신과 건강한 자아상을 제공한다. 우리의 주님되시는 예수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삶을 의미있고 보람되고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우리의 모든 관계들이 제자리를 찾게 한다. 어떤 환경과 역경과 어려움도 주저앉게 하지 못한다. 도리어 가슴을 펴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넉넉히 이기는 여유를 얻게 된다. 예수를 믿는 것은 관계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세워지고,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를 갖게 하며, 세상과 사물과의 바른 관계를 이루게 한다. 아름다운 관계를 세우는 복된 한해가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 더욱 더 가까이, 우리 서로를 향해서도 사랑의 표현이 풍부한 화목한 하나되는 한해를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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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2011 2011년에는
새해 2011년이 밝았다. 우리가 새해를 맞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다. 작년에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부족함이 많았던 해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았다. 새해는 우리가 아주 잘해서 주신 새해가 아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주신 새해이다. 새해에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말씀의 깊이와 깨달음이 커지고 그 말씀이 구체적으로 나에게 먼저 순종되어지는 생활을 소원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한 풍성한 응답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한다. 예배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체험되고 사랑하심의 감격이 넘치게 하실 줄을 믿는다. 찬양이 살아나고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을 높이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생활을 감당하게 하실 줄 믿는다. 새해에는 가정들이 기쁨과 감사가 넘치기를 기도한다.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며 귀하게 여기며, 부모와 자녀들이 사랑하며 존경하며,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의 사람들로 든든하게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학교와 직장과 사회에서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주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높이는 모든 식구들로 써 주시기를 간구한다. 새해에는 모든 경영에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시기를 기도한다. 직장에서 요셉처럼 쓰임받으며, 사업과 경영을 통해서 풍성한 수확을 주시기를 축복한다. 주님이 주신 삶에 풍성함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넘쳐흐르는 은혜 주실 것을 믿는다. 새해에는 우리의 심령의 부흥을 주시고 특별히 교회의 부흥을 주실 것을 믿는다. 영혼구원을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지역사회를 주님께로 드리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길 간구한다. 30년을 맞는 우리 교회가 이제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해처럼 하나님 나라가 널리 확장하는 도구로 쓰임 받기를 앙망한다.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셔서 그래서 권능을 받고 이 시대와 열방을 바꾸는 일에 쓰임 받기를 소원한다. 더욱 사랑이 넘치는 교회, 더욱 은혜가 넘치는 교회, 그리고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가 되게 하실 것을 믿는다. 한반도의 평화를 기도한다. 세계의 평화도 주시기를 원한다. 복음이 이 땅에 충만함으로 보복과 피와 테러의 세계가 아닌 그리스도의 나라로 세워지는 풍성한 은혜를 기대한다. 새해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땅에 이루실 놀라운 역사들을 기대하며 힘찬 첫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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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2010 2010년을 보내며
2010년은 격동하는 한해이었다. 미국은 오랜 불경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온 세계가 경제적으로 힘든 기간이었다. 조국 한국은 G20 정상회담을 주관하는 세계의 지도적인 나라로 우뚝 세워졌으나,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등의 사건으로 마음을 조렸던 해이었다. 한반도 주변의 정세들도 긴장이 더해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 한국과 일본의 독도를 중심한 신경전, 대한민국과 북한이 서해 NLL 을 두고 벌리는 갈등이 세계의 화약고가 되었다. 한반도의 평화가 어느때 보다도 갈망되는 때이다. 성도들도 불경기의 어려움 속에서 힘든 가운데서도 교회를 섬기는 해이었다. 교회들마다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있었다. 2007년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우리에게 기쁨을 준 일들도 있고, 힘든 일들도 있었다. 사실상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염려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성취한 것이 세상의 뉴스의 스팟 라이트는 받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우리가 극히 미약한 존재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들이다.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사용하시는 교회이다. 이제 2010년도를 마지막 보내는 주간에 사랑하는 우리 공동체의 모든 성도들을 격려하고 싶다. 지난 한 해 동안 극한 불경기와 어려움 속에서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며 헌신하는 모습들이 눈물겹도록 감사한다. 힘든 가운데서도 힘에 지나는 헌금으로 다른 성도들을 섬겼던 초대교회처럼 잘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드린다. 재능을 드리고 빠진 구멍을 채우고 남이 보지 않는 가운데서 자리를 지켜내면서 헌신했다. 장로님들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맡은 소임을 위해서 충성하였다. 지금까지 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들도 이루었다. 아쉽고 부족한 부분들은 우리 주님의 은혜가 다 채워주실 것이다. 이제 새해의 새 역사를 위해서 한 마음을 갖자. 한 뜻을 품자. 큰 그림을 그리자. 그리고 하나가 되어서 새해를 맞게 되기를 원한다.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자. 평강의 주님이 성탄과 새해에 함께하심을 믿는다. 주님으로 마음껏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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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2010 범람하는 철학(4) 합리주의
이성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면, 하나님 자체를 부인한다. 그렇게 되면 오직 인간만을 가지고 출발한다. 하나님 없이 인간과 우주에 대한 설명을 발견해 내는 철학이다. 합리주의자는 사상가임을 자랑한다. 하나님을 부인하려고 애를 쓰다가 어리석은 결론을 내린다. 하나님은 우리의 세계와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만 완전히 조화되게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께 등을 돌린 사람은 인생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무신론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수 많은 표시를 너무도 많이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서 그를 분리시키는 것은 매우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합리주의자는 가장 고달프게 인생을 산다. 합리주의자들은 제한된 과학지식에 의존한다. 이들은 사실들을 많이 왜곡해야만 한다. 정직한 과학적 연구는 지적인 창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확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뉴톤, 케플러, 갈릴레오, 베이컨 과 같은 수많은 과학자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과학을 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들은 사실과 신앙이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제외하는 합리주의자는 큰 문제게 봉착한다. 진리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까 무엇이 진실인지를 확신할 수 없다. 플라톤은 “전체를 보지 않고서 어떻게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질문했다. 어떻게 우주에 대한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하고 유한한 인간이 자신이 아는 것을 진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합리주의자는 자기 자신마으로 시작하고 결국 그것도 확신하지 못하고 만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부인하고 마침내 기계가 된다. 자신을 잃어버린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시편14:1, 롬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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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2010 가나안의 우상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 나타난 다양한 우상들의 이름들을 접하게 된다. 성경에 나타난 가나안의 우상들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신들은 엘, 바알, 아세라, 아스다롯, 몰렉 등이 있다. 엘 = 가나안 제신들 가운데 최고의 신이다. 창조의 신이고 인간에게 호의와 자비를 베푼다. 성경에는 엘이 보통 명사로 쓰일 때에는 이방신을 말하지만 고유명사로 쓰일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킨다. 바알 = 상위에 속하는 신으로 난폭한 물인 바다와 강의 압제에 싸워서 굴복시켜서 왕으로 공인받게 되었다고 한다. 바울은 농토와 소출을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이스라엘이 가장 많이 섬겼던 우상이다 (민22:41; 삿10:6; 삼상7:4; 왕상19:18) 바알브릿 = 계약의 신으로 세겜사람들이 섬기던 바알. 엘브릿으로 불리우기도 함. 바엘브올 = 시작의 주로 모압인들이 섬기던 바알이다 (민25:3; 신4:3). 브올이라고 불리기도 함.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싯딤에 진을 쳤을때 이 신을 숭배했다. 바알세붑 = 파리의 주란 뜻으로 불레셋 사람들이 섬기던 바알신. 신약에서는 바알세불로 불리움. 귀신의 왕이라 뜻으로 사단에게 붙여진 명칭 (마10:25; 막3:22; 눅11:15) 아세라 = 가나안의 모신으로 바알과 함께 같은 사당에서 숭배함. 베니게인들과 가나안인들은 풍요의 신으로 믿었고, 남부 아라비아 사람들은 월신으로 숭배했다. 바울과 함께 숭배한 신이다. 아스다롯 = 풍요의 신 아스도렛의 복수형이다. 바알이 바다와 강의 신과 싸울 때에 바알을 도왔다고 믿는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쉬타르 신인데 사랑과 셍산의 신이다. 솔로몬이 숭배하기도 했다 (왕상11:5). 몰렉 = 몰록, 밀곰, 밀감 등으로 알리워진 암몬족의 국가신이다. 황소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어린아이를 희생제물로 바쳤다. 그모스 = 모압의 국가신인데 몰렉과 같은 신이다. 어린아이를 희생제물로 바쳤다. 불의 신이 전쟁의 신인데 솔로몬이 산당을 걸립하기도 했다 (왕상11:7-8) 다곤 = 사람의 머리와 물고기의 몸통을 한 블레셋의 신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날씨의 신인데 가나안에서는 곡물의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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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2010 범람하는 철학(3) : 인간에 대한 믿음
인본주의 humanism 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사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나쁠 것은 없어 보인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친절, 선행, 창의성, 그리고 많은 잠재력이 있다고 기대하는 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은 우리는 대단히 특별하고 또한 중요한 존재이다. 심지어는 악한자라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안다 (눅11:13) 하셨다. 악이라도 우리 안에 있는 선에 대한 갈망과 순수에 대한 찬미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사람은 하나님을 찾게 되어있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행복을 바라도록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인본주의의 치명적인 위험은 능력과 선택을 혼동한다. 성경과 세계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은 선 대신에 악을 선택해 왔다. 심지오는 겉으로 볼 때에 좋은 행위 속에서도 숨겨진 이기심이 있다. 자신의 이익에 대한 희망 속에서 혹은 벌이나 비난을 두려워하여 행하는 선행아닌 선행이 많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 하나님께 이를 수 없다고 하신다 (롬3:23; 7:18). 사람들은 선한 행위로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죄악의 변명으로 삼으려 한다. 모든 종교가 다 선행으로 악행을 덮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사64:6; 마7:21-23).
인본주의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범죄한 다음에 자신의 몸을 무화과 나무로 덮으려고 한 것으로 부터 나타나서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방법을 뒤집으려고 한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닌 자기보호와 공격을 위하여 가인의 후예들은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었다. 노아와 홍수와 같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는다. 이런 인간에 대한 지나친 신뢰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의 철학의 근간이 되었다.
진정한 인간 사랑은 하나님 사랑으로부터 온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참 모습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죄와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님의 피 밖에 없다. 내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사랑을 받는 귀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될 때에 진정한 자기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사람을 믿지를 않는다. 하나님을 믿는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랑의 대상이다. 미래의 선한 행위가 악한 죄를 상쇠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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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2010 범람하는 철학(2): 유물주의
이 세상을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사상은 물질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유물주의이다. 사람들은 안정되고 안락함을 경험할 수록 그들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은 무시하고 물질에 더 관심을 쏟는다. 심지어는 그것들을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게 하고 숭배하고 섬긴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원자이시고 우리의 왕이요 주가 되심에도 불구하고 그것 보다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실 수 있는 능력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장치적인 왕으로 물질의 임금으로 삼으려 했다 (요6:13-15). 원하는 것을 무엇이나 줄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을 원한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다 소유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실이 아니다. 진짜 보물은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이다. 물질주의는 창조주가 아닌 창조물 자체를 헌신의 대상으로 삼는다. 아래것들을 사랑하며, 해충이 해하며, 녹술어 부식하며, 도적질 할 수 있는 것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지속적인 관심과 존경을 표한다. 물질주의는 우리의 눈을 땅으로 향하게 하고 끊임없이 탐하게 만든다. 하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세상은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께는 꼭 매달려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다. 값으로 사신바 되었다. 주님을 사랑함이 은혜이고 축복이다. 물질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고 집중하려고 할 때에 고통을 줄 수 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기꺼히 드리려고 할 때에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은총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외에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물질주의는 참된 제자도와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마13:44-46; 막10:28-30). 이상한 것은 세상이나 물질이나 쾌락을 추구하면 할 수록 쾌락을 발견할 수 없다. 무지개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 전적으로 자신에게 봉사하며 자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실은 잃어버린다. 욕망의 노예가 되면 욕망은 우리를 삼키고 멸망시킨다. 얼마전 복권에 당첨된 1200만불을 기꺼히 남을 위해서 다 사용한 캐나다에 사시는 노부부의 이야기가 신문과 인터넷에 소개되었다. 왜 그렇게 했는가에 대한 노 부부의 말씀은 “자신들은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나 자신의 욕망을 종속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거룩한 삶의 부산물은 행복이다. 부족함이 없는 생활이다. 왜냐하면 목자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누리기 때문이다. 물질주의에 빠져서 물질을 탐익하는 우상숭배에서 자유함을 얻는 길은 하나님의 부요하심과 사랑하심이 흠뻑 취하는 길일 것이다. 어려운 세상에서 물질에서 기쁨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발견함으로 진정한 부요와 기쁨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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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2010 형식주의(Formalism): 전통에 대한 믿음
세상에 범람하는 철학들이 많다. 가장 강력한 철학은 형식주의이다. 아니 전통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다. 우리가 과거에 해 왔던 것들은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하지만 형식주의는 “지금까지 항상 이런 식으로 해왔다” 라는 이유로 일하는 방법을 기꺼이 바꾸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다. 현재의 삶을 위해서 과거에 주의를 너무 많이 집중한다. 물론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울수 있고 배워야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에서는 어제의 방법이 오늘 소용이 없을 수가 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시대의 형식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 율법에 대한 잘못된 관념에 완고하게 집착했다. 마침내 그들의 전통은 그들이 보호하고 있다고 자랑하던 그 계명을 어기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 많은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도덕적으로 옳바른 것 같았지만 예수님은 혹독하게 꾸짖으셨다. “회칠한 무덤들, 독사의 새끼들, 그리고 지옥의 자식들”이라 부르셨다. 형식주의의 위험은 종교적으로 가장한 가장 위험한 종교적 이기주의를 낳는다. 바리새인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사상과 이론이 그들의 신이 되었다. 형식주의는 의식을 포함할 수 있다. 예배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진 사물 자체가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온 세계의 사람들은 나무 돌 쇠에 비극적인 경의를 표한다. 마치 이런 것들이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힘이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사람들도 형식주의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성자, 천사, 심지어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을 영웅숭배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진실이고, 항상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기꺼이 바꿀 생각과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면 형식주의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변하고 있는 문화, 언어, 사회적인 문제점들에 날카로운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복음을 새로운 방법으로 그리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불기둥 (출13:21)과 함께 나가야 한다. 루터, 칼빈, 무디 같은 사람들은 모두 먼지낀 교회의 관례를 깨뜨리고 그들의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하신다면 비록 내가 지난 평생에 해 왔던 일들이라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 야곱, 모세 그리고 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새로운 비전을 가슴에 담고 순종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며 존귀하게 쓰임을 받았다. 형식이 나쁜 것이 아니고 필요한 것이지만 형식에 매일 필요는 없다. 형식에 계속 담겨져 있으면 고인물이 썩는 것 처럼 썩게된다. 하나님은 형식에 자유로우시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하신다. 형식이나 전통에 사로 잡혀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은 우리의 형식에 담기에 너무 크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형식을 넘는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신다. 이스라엘이 불기둥을 따랐던것 처럼 그분에 인도하심에 과감하게 우리의 몸과 삶을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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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성경에 표현 가운데서 물에 대한 표현이 많다. 물은 어디에서나 귀한 것이지만 이스라엘에서의 물은 생명과 같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물에 생수에 비교하신다. 에덴동산에는 물이 많았다. 에덴동산으로 부터 물이 근원이 되어 4개의 강으로 사방으로 흘러 내린다. 건조한 광야의 땅에서는 물은 생명이다. 스가랴는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동서로 흐를 것이고, 여름도 겨울에도 흐르리라 예언했다 (슥14:8). 천국을 소유한 자들은 생명수 샘물로 인도함으로 받고 (계7:17), 생명수 샘물로 마시운다 (계21:6). 천국은 생명수 강이 흐르는데 그 근원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이다 (계22:1), 그것은 성령님의 초청이고 값이 생명수를 받는다 (계22:17). 생명수는 에덴에서 시작해서 성경의 마지막도 생명수로 마친다. 이사야 44:3은 하나님이 갈한 자에게 물을 쏟아 준다고 하셨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물을 마실 때에 토기로 만든 물그릇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물 그릇을 높이 쳐들어서 입속으로 물을 쏟아 넣는다. 물도 삼키지 않는다. 물을 그대로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간다. 이렇게 물을 마시면서도 얼굴이나 옷에 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생수의 근원이라고 하셨다 (렘2:13, 17:13). 우리 예수님도 자신을 생명수 이라고 하셨다. 생수를 주시는 이기 바로 예수님이시고 (요4:10), 또한 예수님을 믿으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올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갈증에 대한 해답이 되신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기에 갈망하는가? (시42:1) 현대인의 문제는 목이 말라서 죽으면서도 목마른 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갈망하고 주의 의를 갈망하는 자에게 주님의 변함없는 약속은 오늘도 이루어진다.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이사야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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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반복하여 고백한 주요한 메시지이다. 솔로몬은 이 땅에서의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린 사람이다. 솔로몬의 부의 크기를 묻는 질문에 답하는 방법으로 성경 열왕기상을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1) 솔로몬은 주변 속국들로 부터 매년 조공을 받았 (4:21) 2) 솔로몬의 일일분의 양식이 엄청난 것으로 그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4:22-23) 3) 솔로몬은 4만필의 말을 소유하였다 (4:26). 그의 유적지들 가운데 거대한 규모의 마굿간들과 훈련장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4) 히람으로부터 금 120달란트를 받았다(9:14). 금4112 kg 의 엄청난 양이된다. 5) 에시온 게벨에 조선소를 건축했다 (9:26) 6) 거대한 선박함대를 소유했다 (9:26-28) 7) 히람의 사공들로부터 금 420 달린트를 받았다 (9:27,29) 8) 스바 여왕으로부터 금 120 달란트와 향품과 보석을 받았다 (10:10) 9) 세금으로 금 666 달란트를 거두었다 (10:14) 10) 각국 상인들로 부터 관세를 받았다 (10:15) 11) 상아로 만들고 금을 입힌 보좌에 앉았다 (10:18-20) 12) 금 그릇들 만을 사용했다 (10:21) 13) 해마다 이방국들에게서 각종 예물을 받았다 (10:23-25) 14) 온 나라가 은을 돌같이 흔하게 여김 (10:27) 15) 천 사백대의 병거와 만이천 명의 마병을 소유함 (10:26) 이것은 솔로몬이 누린 부의 일부이다. 그는 또한 각 전쟁에서 수없는 전리품과 많은 조공들을 받았다. 그야말로 솔로몬은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그 누구보다 더 많이 누렸다. 그런데 그의 인생의 결론은 헛되도다 라는 것이다. 전도서에서 나오는 헛되다는 말을 찾아보니 29번이나 되었다. 정말로 솔로몬의 뼈에 사무친 말이다. 그리고 12장에서는 청년의 날에 인생의 아무런 낙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권면으로 마친다. 물질이 최고의 우상이 되어진 시대에 솔로몬의 권면은 현세의 복을 추구하는 우리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말이 될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8복에서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최고의 복과 부요함을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말씀해 주신다. 진정한 복은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로도 살 수 없는 들의 꽃 한송이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가깝게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이 거듭거듭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우리 주님 만이 헛되고 헛되고 헛된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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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 회칠한 무덤 (마 23:27)
성경에 나타난 기이한 표현들 가운데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고대 뿐 아니라 현대에도 하얀 색칠을 한 무덤은 죽은 자가 누워 있는 곳이라는 표시이다. 축제나 명절이 되면 무덤은 모두가 새롭게 흰 색으로 단장한다. 지금은 장례법이 달라졌지만 요즈음 이스라엘 사람들은 흰색의 돌로 만든 관에 시신을 넣는다. 그리고 그 흰색관은 땅위에 둔다. 가족들이 묘지를 방문할 때마다 석관 위에다가 방문한 표시로 조그만 돌을 올려 놓는다. 무덤에 가보면 조그만 돌들이 많이 올려진 관이 있고 또한 없는 관도 있다. 옛날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덤을 만지만 부정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기 때문에 무덤까지라도 손을 대면 악에 물들게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무덤에는 항상 흰 색을 칠해 놓았다. 그래야 쉽게 식별해서 피해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실 때에 이런 풍습에 대하여 언급하셨다. 무덤을 흰색으로 칠해 놓은다고 해서 무덤의 본성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죽은 사람의 시신과 뼈가 들어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는 위선적이고 회식적인 마음 겉은 깨끗하게 보이지만 속은 온갖 냄새가 가득한 부패한 마음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신앙을 외적인 장식품에 지나쳐서는 안된다고 하신다. 성도는 안과 밖이 다른 회칠한 무덤이 아니라 안과 밖이 같은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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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2010 한국적 복의 개념
새해가 되면 복주머니, 복조리 등이 잘 팔리고 토정비결이 베스트 셀러가 되어지는 것이 한국의 풍속도이다. 이것을 통해서 조상들과 우리들의 복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알수 있다. 복의 개념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대표적인 개념은 오복 즉 다섯가지 복인데 (1) 훌륭한 아내를 맞는 일, (2) 부유해 지는 것, (3) 평안을 누리는 생활, (4) 덕을 쌓는 일, (5) 죽을 때에 뜻을 이루는 일들이다. 한자로 복을 풀어보면 복이란 의복, 입, 밭, 하나가 합쳐져서 이룬 단어이다. 즉 옷 한벌 입고, 입에 풀칠하는 전답이 있으면 하는 극히 현세적이고 소박하다. 최근에 통계를 보아도 물질이 많다고 사람이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인이 가진 하나님관은 창조주 하나님이나 윤리적 인격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다. 화와 복을 내리는 보이지 않는 힘 정도이다. 하나님께 비는 것도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인 기도이다. 한국의 천 사상도 무신론 사상을 바탕으로 한 운명론인 셈이다. 따라서 한국은 샤만이즘적 신앙을 쉽게 받아 드린다. 원래 불교와는 달리 한국의 불교는 샤만이즘과 동화되었다. 4세기 이차돈의 죽음으로 인해서 신화를 더하려 하여 샤만이즘이 이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불교는 미신적인 요소를 받아드리고 고려말에는 절간 입구에 장승이 세워지고, 절간 안에 산신각이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유교도 종교라기 보다 생활철학이었다. 하지만 주역도 샤만이즘의 영향으로 점치는 책으로 변했다. 오행설도 중국의 천문 의학의 학문으로 시작했지만 한국에서는 관상 풍수 사주등의 샤만니즘의 도구가 되었다고 한다. 재앙을 피하고 복을 비는 정토신앙화 된 것이다. 한국인의 종교관은 영적차원의 구원보다 복을 구하는 사상으로 기울려졌다. 이런 샤마니즘의 암반이 진정한 복음의 씨가 뿌리 내리는 것을 막고 있다. 그래서 구원의 복음보다는 돈벌고 병낫고 축복을 받았다는 체험이 더 환영을 받게 된다. 요행주의가 판을 치고, 행운을 약속하는 예언에 귀가 솔직해지는 세태이다. 한국 역사에 토정비결이, 또한 말세성을 가미한 정감록이라는 혹세적 예언서가 나왔다. 백년도 안되는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 자칭 재림주들이 등장했다. 황국주, 감람나무 박태선, 재림주 문선명을 위시해서… 최근의 정명석 등의 수 많은 가짜 예수들이 사람들을 어지럽힌다. 제멋대로의 해석하는 말세론이 판을 치고 예수 점쟁이들이 판을 친다. 이런 요행주의의 축복적 개념이 지배하는 민속신앙에 그 원인이 있다. 우리는 성경적인 복의개념을 깨닫고 우리의 잘못된 복의개념을 바로 잡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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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2010 성경시대의 음식
성경시대에는 곡식이 주요 식량원이었다. 하지만 곡식이 너무도 귀해서 곡식이 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곡식은 건조상태로 오랜 기간을 보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육류, 야채류 등의 음식보다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밭에 나가서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는 것은 주로 남자들의 몫이었다. 부녀자와 아이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곡식을 가공하는 일들을 하게 되었다. 부녀자들은 옥수수 알갱이들을 솎아서 썩은 것을 골라냈고, 뜨거운 화덕에서 볶거나 잘게 빻아 옥수수 빵을 만들었다. 이스라엘에서는 곡식류 외에 포도, 올리브, 무화과도 잘 자랐다. 포도는 으깨어서 발효시킨 다음에 음료로 마셨다. 올리브 나무 (감람나무)의 열매는 압착하여 기름을 짜서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을 했다. 요리는 물론, 세탁, 초롱불, 의학적인 용도로도 사용을 했다. 무화과 나무로도 각가지 요리를 만들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식단을 풍성하게 했다. 무화과 나무, 감람나무, 포도나무 등은 이스라엘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나무들이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나무들을 통해서 영적인 교훈을 주시는데 이런 나무들은 이스라엘의 상징으로 곧장 사용이 되었다. 마 24:32에 보면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하셨다. 무화과 나무는 창세기에서 나와서 마지막 요한계시록에서도 나온다. 에덴 동산에 범죄한 아담과 이브가 만들어 입었던 옷이 무화과 나무 잎으로 만든 옷이었다 (창3:7). 무화과 나무는 요즈음 한국의 표현으로 국민 트리라고 할 정도이었다.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 징조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운명을 말씀하셨다. 열매맺지 못해서 저주받아 마른 무화과 나무는 멸망 당하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마태복은 24장의 예수님의 종말장에서 말씀하시는 무화과 나무의 비유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징조는 이루어졌다. 저주받아 마른 무화과나무 처럼 주후 70년에 디도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멸망당했다. 그리고 잎이 연해진 무화과 처럼 지난 인류의 역사상 1900여년동안 나라를 잃고 흩어져서 살던 이스라엘이 1948년에 다시 국가를 이룸으로 인해서 성취되었다. 지난 주간에 추석이 지났다. 추수 때의 한국의 전통과일은 배, 감, 밤, 대추 등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금년의 한국은 배가 흉작이 되어서 추석 대표선물이었던 자리를 내어 주게 되었단다. 요즈음의 한국은 기후가 변해서 한국의 전통 과일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변화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스라엘의 대표 과일은 무화과, 포도, 감람열매라고 할 수 있다.예수님께서 하신 교훈과 비유 속에서도 무화과 나무는 여러 번 등장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에게는 생소한 과일이지만 웬지 가깝게 느껴진다. 풍성한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주님이 무화과 나무를 통해서 주신 그 귀한 교훈들을 음미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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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2010 성경의 표현들: 멧돌 가는 두 여자 예수님께서는 재림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맷돌가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하신다 (마24:41). 맷돌가는 두 여자의 이야기는 고대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두 여자가 맷돌을 앞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아서 맷돌을 돌린다. 왼손으로 맷돌 핸들 자루를 잡고 오른 손으로 곡식 낱알들을 맷돌 위에 있는 구멍에 집어 넣는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에 함께 하는 일들이 많다. 모내기는 물론 추수도 함께 한다. 남자들이 톱질을 할 때에 둘이서 밀고 당기면서 톱질을 하듯이 두 여인이 맷돌 자루를 잡고 밀고 당기는 일을 계속한다. 남자들은 맷돌을 가는 일이 없다. 맷돌은 사이즈가 다양하지만 매우 피곤한 작업이다. 그래서 노예들이나, 미천한 종들이나, 여인들이 맷돌질을 했었다. 큰 맷돌인 연자 맷돌은 짐승들에게 매어서 끌도록 만들었다. 또한 맷돌질은 전쟁 포로들에게 하게 만들었다. 성경의 삼손은 노예나 여인들이나 짐승들이 하던 맷돌질을 하느라고 고통을 당했다. 수치 중의 수치이고 짐승보다 더 못한 밑바닥 인생의 처참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경에서 맷돌의 소리는 아름다운 소리이다. 가정에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맷돌소리가 적어지는 때는 (전12:4) 재앙의 때이다. 맷돌은 많은 양의 곡식을 빠을 수 없기 때문에 매일 매일 해야 한다. 농부의 아내들은 수수한 옷을 입었다. 걸으면 땅에 끌리는 긴 옷을 입었다. 항상 머리를 감추고 다녔지만 남자가 없이 여인들만 있을 때에는 머리를 드러내고 다리를 들어내고 맷돌을 갈았다. 이사야 47:2 에 “맷돌을 취하여 가루를 갈라 면박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들어 내고” 라고 말한다. 맷돌소리가 끊기는 것은 재앙이다. 예레미야 25:10은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끊쳐지게 하리니” 하셨다. 맷돌소리는 듣기에 즐거운 소리이다. 예수님은 두 여인이 맷돌을 갈고 있을 때에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하나는 남겨 둠을 당한다고 하셨다. 주님이 오실 때에 선택과 버려둠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이 있으면서 같은 일을 해도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주님 보시기에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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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2010 성경의 표현들: 도울 수 없는 핑계
성경에 보면 눅11:7에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 없도다” 라는 말이 나온다. 시골의 주택은 방이 하나 밖에 없다. 따라서 한 방에서 식구들이 함께 잠을 잔다. 3-4대가 한집에 모여 사는 것도 흔한 일이다. 때로는 미망인이 된 누이나 아주머니도 함께 산다. 집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쪽은 높다. 이 높은 쪽은 낮에는 부엌, 식당 및 거실로 사용하고 밤에는 침실로 사용한다. 반면에 낮은 쪽은 가축들을 위한 방이다. 여름에 가축들은 밖에서 잠을 자지만 그 밖의 계절은 밤에 가축들을 방안에 들여서 함께 있게 한다. 가축의 몸에서 나는 온기가 따뜻하게 해 준다. 하지만 밤이 되면 소와 한두마리 당나귀, 여러 마리의 염소와 개가 함께 잠을 잔다. 해가 지면 바로 잠자리에 든다. 땅거미가 찾아들 때면 마루에 매트레스나 누비 이불을 깐다. 집안의 모든 식구들은 각자의 자기의 겉옷을 덮고 잔다. 이런 상황인데 아버지가 이웃의 어려운 사정을 도와주려고 일어나면 집안의 모든 식구들이 다 깨워야 한다. 따라서 듣기보다는 훨씬 더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럴싸한 핑계들이 많다. 돕지 않으려고, 하지 않으려고, 관계치 않고자 수 많은 핑계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는 과정에 배고픈 이웃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좀더 솔직하게 나 자신을 열고 이웃을 받고 도와주는 손을 먼저 내 밀어야 하겠다. 이번 주간에 내가 핑계하지 않고 이웃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내가 불편을 각오할 때에 나의 이웃의 필요는 충족되어져 간다. 아이들을 다 깨워서라도 이웃과 성도를 도울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감사하고 즐거워할까? 우리 주님은 모든 불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셨다. 그리고 구원해 주셨다. 주님을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손길을 내 밀기를 주저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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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2010 솔로몬의 성전의 기물: 금돌쩌귀
새벽기도마다 ¿왕기상을 읽고 있다. ¿왕기상 7:49에 보면 솔로몬의 성전의 기명들의 리스트 가운데 금돌쩌귀가 나온다. 다른 이름들은 귀에 익은데 이것은 무엇인가 의아하게 생각된다.생전 처음 듣는 단어 같다. 금 돌쩌귀가 무엇인가? 이것은 성전 문과 설주를 연결하는 연결고리를 말한다. 영어로 하면 the hinges for the doors 라고 할 수 있겠다.
솔로몬의 성전은 돌로 짓고, 안에는 백향목으로 싸고 금을 입혀¼ 성전안을 금으로 장식했다. 성전 안의 기명들이 다 금이다. 등대도, 떡상도, 향단도 다 금이다. 그 성전 안에¼ 성전의 문을 설주와 연결하는 돌쩌귀도 역시 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¼ 금 돌쩌귀라고 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À이 준비한 성전을 짓는다. 7년반의 기간 동안에 수많은 인부들이 동원하여 성전의 외소와 내소와 모든 기명들을 만들고 짓는다. 솔로몬의 공사를 통해¼ 자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다해 성전을 세운 것을 볼 수 있다. 보통은 눈에 보이는 부분은 정성을 다하는데 보이지 않는 부분은 적당하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솔로몬은 성전문을 연결하는 연결고리 마져도 금으로 만들었다. 눈에 잘보이는 등대나 떡상들을 금으로 할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돌쩌귀를 금으로 만들었다. 하나님께¼ 다À을 통해¼ 말씀하신 그 성전의 식양대로 만든 것이다.
금돌쩌귀는 신앙생활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부분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 극히 세미한 부분까지 금돌쩌귀를 만들어 단 것과 같은 자세로 살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신앙생활을 잘 할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잘 감당해야 한다. 사람들 눈에 보이는 일들을 잘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일들을 잘 감당해야 한다. 왜 우리는 돌쩌귀마져도 금으로 만드는 신앙을 가질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극히 작은 부분도 역시 하나님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금돌쩌귀를 다는 그 마음을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믿는다. 나의 생활도 눈에 보이지 않고 숨어있는 금돌쩌귀를 다는 마음으로 살때에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리라 믿는다. 금돌쩌귀를 다는 진실함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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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2010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눅7:38)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동네에 한 죄 많은 여인이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왔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며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이 사건은 다른 세복음서에 나오는 사건과는 다른 사건으로 갈릴리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고대의 문서들을 보면 온 가족의 눈물을 모아서 병에 보관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게된다. 다윗왕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56:8)” 라고 기도했다. 고대 묘지를 발굴해 보면 수 많은 눈물병들이 출토되었다. 눈물병들은 주로 얇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굽지도 않고 광택도 내지 않은 단순한 토기로 만든 병들을 사용했다. 눈물병들은 모두가 바닥은 넓고 몸통은 호리호리하다. 입모양은 깔대기 모양으로 생겼다. 식구들은 각기 눈물병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고 모든 식구들의 눈물을 한군데 모았다. 가정에 누가 심하게 아프거나 죽으면 모든 친척들은 제각기 눈물병 하나씩 챙겨서 그리로 모여든다.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을 눈물병에 담았다. 이 눈물병은 매우 성스러운 것이었다. 가슴을 에이는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나타낸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눈물병을 유물로서 함께 안치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초대하기는 했지만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주님께 발을 씻을 물을 드리지 않았고 머리에 기름도 부어드리지 않았다. 이 여인은 죄많은 여인이었다. 이는 창녀에 대한 통속적인 표현이다. 죄인이로 지탄받는 여인이 감히 종교적 선생인 바리새인의 집에 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죄 많은 여인은 자기의 과거를 청산하고 주님의 은총과 새로운 삶을 갈망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대한 자기의 갈망과 사랑을 표현했다. 예수님의 발에 자기의 눈물병의 모든 눈물을 부었다. 자기의 머리털로 씻고, 발에 계속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예수님께 대한 최상의 존경심을 표현했다. 여인은 자기의 인생의 모든 아픔과 눈물을 주님께 쏟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다. 이것이 신앙이다. 예수님이 죄인인 여인을 인정해 주셨다.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나는 내 인생의 눈물병이 있는가? 나의 기쁨과 아픔의 눈물을 주님께 부어 드리자. 모든 것들을 의탁하자. 주님의 구원과 평안을 누리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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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2010 이럴 땐 이런 말씀
피곤할 때: 시편 23편 마음이 아플 때: 히브리서 12장 말로 실수 했을 때: 야고보서 3장 시험 받을 때: 다니엘서 1장, 고린도전서 10장 옳은 일을 위하여 분투할 때: 로마서 7,8장 용기가 필요할 때: 여호수아 1장, 에베소서 6장 조언이 필요할 때: 잠언 자신의 가치가 의심스러울 때: 로마서 4장, 5장 우울할 때: 시편 42편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싶을 때: 요한복음 3장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할 때: 마태 5장-7장, 골로새서 2장 예수님이 누구신지 궁금할 때: 요한복음 6-10장 교회가 무엇인지 궁금할 때: 고린도전서 12장 상처 받았을 때: 고린도전서 6장 죄책감을 느낄 때: 요한일서 1장,2장 의심이 몰아칠 때: 히브리서 11장 사랑이 필요할 때: 고린도전서 13장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빌립보서 2장 두려울 때: 시편 27편 인도하심을 구할 때: 시편 25편 자포자기 하려 할 때: 디모데후서 2장 잘못된 출세욕이 생길 때: 전도서 낙심 할 때: 로마서 8장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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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2010 영적 혼돈의 시대
우리는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앞날을 전망할 수 없다.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문제는 보이는데 처방이 다 소진해 버린 시대이다. 불확실성에다 방향을 잃어버린 혼돈의 시대이다. 영적인 면에서 혼돈은 더 심화되어진다... 지금 한국은 아프리카에서 와서 집회를 하고 간 데이비드 오워 때문에 혼통 시끄럽다고 한다. 그는 아프리카 케냐 사람으로 우간다와 케냐에서 대학을 마치고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에서 유전자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다. 그는 목사가 아니고 다만 직접 계시를 받아서 예언 사역을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선지자라고 따른다. 그가 한국에 와서 집회를 하는 동안에 꿈에서 받은 계시를 말했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2개월 내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이것이 이메일과 텍스트 문자로 한국 전역에 천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물론 회개의 메시지는 들어야 하고 또한 강조되어야 한다. 회개하는 것은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서도 해야할 이지만 또한 나귀의 말을 듣고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회개라는 성경적인 메시지에다가 직통계시를 받아 한다는 자기주장에, 애매모호한 예언,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예언은 성경적 예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을 하셨다. 주님은 깨어 있어서 분별하고 속지말라는 말씀하셨다. 혼돈의 시대는 미혹함이 극에 달하게 된다 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24:4,5,11, 24)”하셨다. 짧은 단락 속에서 미혹이라는 단어를 4번이나 사용하셨다. 24절에는 심지어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 하리라 하셨다. 자신이 그리스도라 라고 하는 거짓 그리스도가 많은 사람들을 미혹케 하고 (5절), 자신이 선지자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리라 (11절) 하셨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시대에서 보고 있지 않는가? 지금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혼돈은 약한 영의 하수인들이 일으키는 사건들로 하나의 예고편이다.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하고, 가짜 재림, 가짜 재앙, 가짜 영성, 가짜 신앙을 자꾸 터지게 해서 정말로 중요한 진리를 듣지 못하게 하려는 악한 사단의 시도들이다. 가짜 재림 사건은 진정한 재림의 메시지를 듣지 못하게 하고, 가짜 영성은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 성령님의 역사를 거부하게 하려는 적어도 성령님의 역사에 거부감을 갖게 하려는 사단의 고도의 전술이다. 가짜 영성의 시대에 사는 우리를 위해서 진리와 은혜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와 일하심을 믿고 또 사모한다. 성령님께서 교회를 깨우시고, 목사들을 깨우시고, 영적 지도자들을 깨우시고, 모든 성도들을 깨워주시기를 갈망한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조명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혼돈을 극복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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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010 성경에 사용된 언어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많은 시대를 거쳐 기록이 되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읽혀지기 위하여서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서 기록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성경의 언어는 무엇일까? 구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성경은 약 1600여년간에 걸쳐서 기록된 책이다. 구약은 모세의 시대인 주전 1500여년경 부터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의 시대는 주전 400년 경에 끝난다. 그후에 예수님이 오시고 신약성경은 마지막 저자인 사도 요한의 시대 주후 100년경에 완성된다. 이 기간 동안에 세계의 언어도 바꾸어지게 된다. 예수님 당시의 말하는 언어는 아람어이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아람어들이 간혹 등장한다. 그런데 신약 성경은 그 때 당시의 세계 통용어인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물론 헬라어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고전 헬라어, 코이네 헬라어, 비잔틴 시대의 헬라어, 현대 헬라어가 있었다. 신약성경은 코이네 헬라어로 쓰여졌다. 주전 4세기경부터 헬라문화권의 맹주인 마게도냐의 빌립2세와 아들 알렉산더는 헬라어가 보급된다. 알렉산더의 세계의 정복과 헬라문화의 전승은 소아시아, 시리아, 팔레스틴, 이집트 내륙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로마가 헬라를 정복한 이후에도 세계적 공용어의 필요와 풍부한 언어 표현이 가능한 헬라어를 공용어로 사용했다. 주전 4세기 부터 주후 4세기까지의 세계 공용어를 코이네 헬라어라고 한다. 이집트의 톨레미 궁전에서도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을 히브리말을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서 헬라말로 번역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사용한 70인경 (Septuagint, LXX) 이다. 코이네 헬라어는 구어체와 문어체 코이네로 나누인다. 구어체는 서민들이 사용하던 통속적인 헬라어이고, 문어체 헬라어는 고대 헬라어 표현양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신약성경은 주로 서민들이 즐겨 사용하던 구어체 헬라어로 쓰여졌다. 주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누가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는 뚜렷한 문어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하나님은 복음의 확장을 위해 우리에게 주신 신약성경을 위한 온 세계를 통용할 세계 공용어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리고 세계적인 언어로 신약성경이 기록되게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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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2010 열왕기서에서 믿을 만한 다른 책이 있습니까 ?
새벽마다 역사서인 열왕기상을 묵상하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보통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는 잘 알지만 역사중에 나타난 왕들의 이야기는 의외로 잘 모른다. 물론 두 나라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또한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의 뒤엉킨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억하기 힘들다. 그래서 아침 묵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열왕기서에 보면 저자가 성경을 쓰면서 인용했다고 분명히 밝히는 자료들이 언급되어 있다. 무슨 책들인가? 그것은 솔로몬의 행장, 유다왕 역대지략,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 등이다. 또한 열왕기서에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참고한 것이 확실시 되는 책들도 있다. 그것들은 다윗의 궁전 비망록, 선지자 엘리야의 행적기, 선지자 엘리사의 행적기, 선지자 이사야의 행적기 등이다. 솔로몬의 행장이란 열왕기상 11:41에서 참고했다고 밝힌 책이다. 주전 9세기경의 문헌으로 추정한다. 이 자료에서 많은 내용들을 인용하는데, 솔로몬이 바로의 공주와 결혼한 이야기 (왕상3:1), 지혜를 구한 일 (3:4-15), 명재판 (3장), 솔로몬의 각료와 지방장관 명단 (4장) 성전건축과 봉헌 (6장, 8장), 스바여왕 (10장), 여로보함의 도주 (11장) 등이다. 아마 그의 지혜와 영광을 기록한 일종의 전기이었던 것 같다. 유대왕 열대지략은 15번이나 언급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과 이스라엘 역대지략과 같은 책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은 주전 730년경에 기록되었고, 유대왕 역대지략은 주전 590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정확한 연대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왕 역대지략은 17번이나 언급된다. 제목이 명시되지 않는 자료들도 역시 내용이 다른 자료들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저자가 성경을 기록할 때에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정확한 기록이 되게 하신다. 열왕기상을 통해서 주시는 새벽마다의 은혜를 사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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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2010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 (요6:35)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지칭하셨다. 사실 떡이라는 말은 번역이지 원래의 의미는 빵이라는 말이 된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의미가 강하지 않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의미 심장한 것이다. 떡(빵)은 중동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주식으로서 성스러운 것이었다. 아랍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떡이 한조각 떨어진 것을 보면 그것을 주워서 경의의 표시로 이마에 갖다 댄 다음에 사람들의 발에 밟히지 않도록 벽이나 바위 뜸에 조심스럽게 끼워둔다고 한다. 원주민들이 먹는 빵은 보통 둥글고 평평한 빵으로 그 두께가 1 cm 에서 3 cm 가량 된다. 이 사람들은 발효가 된 빵을 먹지 않고 부인들은 식사 때 마다 빵을 새로 굽는다고 한다. 오븐은 약간 볼록한 얇은 철판을 사용한다. 돌 서너개를 밑에 고여 놓고 철판을 올리고 밑에서 불을 지핀다. 부인들은 철판 오븐 위에 발효되지 않는 가루 반죽을 두껍고 크게 떼어서 올려 놓는다. 빵이 다 구워지면 마치 큰 팬케이크 처럼 보이는 땅이 된다. 유목민들은 천막 속에 바닥에 구멍을 파고 불을 피운다. 그리고 작은 돌맹이를 여러개 올려 놓고 빵을 굽는다. 아마 사라도 천막 안에서 아궁이 속에 올려 놓은 돌 위에다가 빵을 구워서 천사들을 대접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사자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성경의 상징 속에서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나타나신다. 예수님이 스스로 구약을 해석해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 하늘에서 매일 아침마다 주시는 기적이었다. 그들은 척박한 광야에서 만나를 먹음으로 살수 있었다. 이 만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말씀하여 주셨다. 우리도 만나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매일의 영적인 생명과 육신의 생명을 살아갈 수 있다. 예수님의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이다. 단어의 의미는 떡집이라는 뜻이다. 떡집에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만나를 매일 새롭게 주신 것 처럼, 떡을 매일 새롭게 만들어 먹는 것 처럼,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매일 공급받음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된다. 주님의 모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영적인 배고픔이 없는 큰 은혜를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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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2010 세계적인 전염병 우울증
인생의 최대의 질문이고 똑 대답을 찾아야 하는 질문은 바로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이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성경을 주셨다. 그렇다면 첫째로 예수님은 누구신가? 마태복음에서도 또한 동방박사 이야기를 통해서도 반복되는 주제는 예수님은 누구이신가에 대한 대답이다. 1)예수님은 왕이시다 (2절). 본문에도 계속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심이 강조된다.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신 왕이심을 증거한다. 본문의 동방박사들의 첫 질문도 유대인의 왕이 어디계시뇨 이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질문에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심을 증거하신다 (27:11). 군병들의 희롱 (27:29), 예수님의 죄패 (27:37),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조롱도(27:42) 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신다 증거한다. 2)또한 예수님은 그리스도 이시다 (4절). 동방박사들의 질문을 헤롯은 그리스도이시라고 해석한다. 대제사장과 세기관들도 메시아 라고 (믹5:2) 해석한다. 예수님이 대제사장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질문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 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 라고 확인해 주신다 (26:63).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이시고 심판자 이심을 선언하신다. 3)예수님은 바로 그 한 다스리는 자 (미5:2, 마2:6)이시다. 우리 주님은 다스리는 자이시다. 왕이시다. 철장 권세를 가지신 심판주이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주재자이시다. 현대인은 왕, 다스리는 자 자체를 싫어한다. 현대인들은 제멋대로 자기 소견에 좋을 때로 행한다. 왕을 모심이 체질에 맞지 않다. 본문은 두명의 왕을 말한다. 헤롯 과 예수님이시다. 사람들은 이 둘 중에 하나를 모시고 산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다스리심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의 통치 방법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목자이시다. 목자는 돌본다, 보호한다, 먹이신다, 물을 제공하신다, 동행해 주신다. 목자가 함께 계시면 양이 염려할 것이 없다. 양은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이 세상의 최고로 좋은 존재가 목자이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시다. 목자는 사랑으로 다스리신다. 주님의 인도하심 받자.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자.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누리는 것들 무엇인가? 1) 동방박사들의 목적은 예수님을 찾는 것이다 (2절). 이것은 최고의 인생의 목적이다. 바른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박사들은 별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별의 주인을 찾는 것이다. 성경에 별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데 별의 상징 가운데서 가장 궁극적인 것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광명한 새벽별이시다 (계22:16; 2:28). 발람의 메시아 예언의 성취이시다 (민24:17,19). 2)예수님을 찾으면, 믿으면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신다. 목자를 모신 양은 망하지 않는다. 인도하심을 받는다. 인생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해서 찾아야 할 분이시다. 3)예수님은 목자로서 우리를 보호하신다. 동방박사들의 믿음이 귀하다. 그들은 별을 숭배하지 않는다. 그 별이 보여주는 예수님께 경배한다. 별을 추구하지 않고, 별이 보여주는 그분을 추구한다. 별의 주인에게 경배한다. 가장 귀한 믿음의 모습이다. 우리의 인생의 별은 무엇인가? 돈인가, 행복인가, 건강인가, 성공인가? 아니다. 우리의 별을 숭배해서는 안된다. 인생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4)목자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우리는 말씀으로 깨우침을 받게 된다. 동방박사들은 가장 아름다운 신앙인의 여정을 보여 준다. 이들의 기대 헛되지 않는다. 아름답게 성취된다. 이들의 여정은 성경에 영원한 기록으로 남는다. 동방박사 이야기를 기록한 마태의 의도가 무엇인가? 성령님은 우리가 바로 바로 동방박사들과 같다고 하신다. 우리는 동방박사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서 무엇을 추구하는가? 땅을 쳐다보고 사는 삶 보다 별을 보는 인생은 더 낳다. 하지만 그 이상의 생이 있다. 그것은 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별의 주인이 되시고 창조자가 되신 예수님을 바라고 사는 생이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인생의 복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진정한 보화를 가진 사람이고 또한 진정한 행복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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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010 건전한 자아상
요즈음 처럼 힘들다 보면 자존감이 많이 상하게 된다. 신경이 예민하여서 조그만 일에도 마음이 상한다. 오가는 말도 거칠어지기 쉽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살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리스 신화에는 나르시스라는 아름다운 소년이 나온다. 그는 산의 요정인 에코의 사랑을 포함하여 모든 사랑을 거부한다. 그 벌로 그는 연못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된다. 그는 날이 가고 세월이 흘러도 자신만을 사랑스럽게 바라 볼 뿐이다. 나르시스의 신화는 현대인을 보여준다. 현대인들은 자기 사랑에 도취되어 산다. 자기 만을 사랑한다. 자신 만을 믿는다. 자신 만이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능력있다고 믿고자 한다. 자신의 영상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성경은 진실된 자아를 보여주시는 합당한 유일한 거울이다. 말씀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확인시켜주시고 또한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는 수많은 말씀들을 접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예술품이며, 창조물 중의 걸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하는 우리의 갈망이 해결이 된다. 또한 성경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무릎을 꿇게 한다. 예술품이 파괴되었고, 우리는 손상되었다. 오직 예술가 자신만이 느리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복원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때로는 우리가 회복되어 완전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이 모든 여정에서 우리를 넘치게 충분히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회복된 자녀들은 세상을 이기는 역설적인 인생을 산다. 타락했으나 용서받고,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옛 사람이나 새사람이고, 약하나 강하며, 가난하나 부하고, 죽었으나 산 존재들이 된다. 이 놀라운 은총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누리자! 메마른 땅에 이른 새벽에 주시는 은혜의 단비의 잔치로 초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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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2010 아버지없는 사회 아버지날을 맞는 우리를 경각시키는 경고가 있다. 현대사회의 가장 긴급한 최고의 위기는 우리의 사회가 ‘아버지 없는 사회 Fatherless Society’로 되어가는 것이다. 아버지 없는 가정의 문제는 심각하다. 미국에서 확인된 자료들을 보면, 자살하는 젊은이들의 63%는 아버지없는 가정에서 온다. 노숙자나 집을 떠난 자녀들의 90%는 아버지 없는 가정 출신이다. 노출증 행동 장애의 85%가 아버지 없는 가정이다. 강간범의 80%가 아버지 없는 가정의 분노에서 동기되었다. 고등학교를 포기하는 학생의 71%가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온다. 청소년 약물중독의 모든 환자 중 75%가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온다. 청소년 보호소의 70%가, 또한 감옥에 수감된 청소년의 85%가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온다.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경험하는 문제는 더 확산된다.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자란 딸이 아버지없는 아이를 낳을 확률은 164%이다. 10대 임신한 소녀들의 71%는 아버지 없는 가정이고,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자란 딸들이 이혼할 확률은 92%이다. 또한 10대 살인자들의 72%가 아버지없는 가정출신이고, 아버지 없이 자란 아들은 범죄할 가능성이 2배가 많고, 아버지 없는 딸들의 53%가 10대에 결혼을 한다. 아버지없는 자녀들이 심리적 정신적 도움을 구할 가능성이 2배가 된다. 이러한 통계들이 의미하는 것은 엄청나다. 아버지 없는 가정의 자녀들은 자살 가능성이 5배가 높고, 가출할 가능성이32배나 높고, 행동장애를 일으킬 확률은 20배가 높고, 10대엄마가 될 가능성이 6.6배가 높고, 강간할 수 있는 확률이 14배가 높고, 고등학교를 그만둘 확률은 9배나 높고, 약물중독에 빠질 확률은 10배가 높고, 주가 운영하는 청소년 보호소에 갈 확률이 9배가 높고, 감옥에 갈 확률은 20배가 높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 대한 대책은 없는 것인가? 먼저 아버지들이 깨어야 한다.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으로의 권위가 회복되어야 한다. 아버지의 권위가 세워 질 때 그 가정은 행복해진다. 어머니는 자녀들 앞에서 아버지를 존경하고 높여 들여야 한다. 영적권위도 주어진 (given) 것이 아니라 얻어진 (earned)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잠23: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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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2010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이는 사람이 가지는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시며 또한 존재하신다면 어떤 분입니까 하는 질문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질문이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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