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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2010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눅7:38)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동네에 한 죄 많은 여인이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왔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며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이 사건은 다른 세복음서에 나오는 사건과는 다른 사건으로 갈릴리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고대의 문서들을 보면 온 가족의 눈물을 모아서 병에 보관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게된다. 다윗왕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56:8)” 라고 기도했다. 고대 묘지를 발굴해 보면 수 많은 눈물병들이 출토되었다. 눈물병들은 주로 얇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굽지도 않고 광택도 내지 않은 단순한 토기로 만든 병들을 사용했다.
눈물병들은 모두가 바닥은 넓고 몸통은 호리호리하다. 입모양은 깔대기 모양으로 생겼다. 식구들은 각기 눈물병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고 모든 식구들의 눈물을 한군데 모았다. 가정에 누가 심하게 아프거나 죽으면 모든 친척들은 제각기 눈물병 하나씩 챙겨서 그리로 모여든다.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을 눈물병에 담았다.  이 눈물병은 매우 성스러운 것이었다. 가슴을 에이는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나타낸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눈물병을 유물로서 함께 안치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초대하기는 했지만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주님께 발을 씻을 물을 드리지 않았고 머리에 기름도 부어드리지 않았다. 이 여인은 죄많은 여인이었다. 이는 창녀에 대한 통속적인 표현이다. 죄인이로 지탄받는 여인이 감히 종교적 선생인 바리새인의 집에 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죄 많은 여인은  자기의 과거를 청산하고 주님의 은총과 새로운 삶을 갈망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대한 자기의 갈망과 사랑을 표현했다. 예수님의 발에 자기의 눈물병의 모든 눈물을 부었다.  자기의 머리털로 씻고, 발에 계속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예수님께 대한 최상의 존경심을 표현했다. 여인은 자기의 인생의 모든 아픔과 눈물을 주님께 쏟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다. 이것이 신앙이다.
예수님이 죄인인 여인을 인정해 주셨다.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나는 내 인생의 눈물병이 있는가? 나의 기쁨과 아픔의 눈물을 주님께 부어 드리자. 모든 것들을 의탁하자. 주님의 구원과 평안을 누리게 되리라.

 

8/15/2010             이럴 땐 이런 말씀

피곤할 때: 시편 23편
마음이 아플 때: 히브리서 12장
말로 실수 했을 때: 야고보서 3장
시험 받을 때: 다니엘서 1장, 고린도전서 10장
옳은 일을 위하여 분투할 때: 로마서 7,8장
용기가 필요할 때: 여호수아 1장, 에베소서 6장
조언이 필요할 때: 잠언
자신의 가치가 의심스러울 때: 로마서 4장, 5장
우울할 때: 시편 42편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싶을 때: 요한복음 3장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할 때: 마태 5장-7장, 골로새서 2장
예수님이 누구신지 궁금할 때: 요한복음 6-10장
교회가 무엇인지 궁금할 때: 고린도전서 12장
상처 받았을 때: 고린도전서 6장
죄책감을 느낄 때: 요한일서 1장,2장
의심이 몰아칠 때: 히브리서 11장
사랑이 필요할 때: 고린도전서 13장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빌립보서 2장
두려울 때: 시편 27편
인도하심을 구할 때: 시편 25편
자포자기 하려 할 때: 디모데후서 2장
잘못된 출세욕이 생길 때: 전도서
낙심 할 때: 로마서 8장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자!


 
8/8/2010            영적 혼돈의 시대

우리는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앞날을 전망할 수 없다.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문제는 보이는데 처방이 다 소진해 버린 시대이다. 불확실성에다 방향을 잃어버린 혼돈의 시대이다.
영적인 면에서 혼돈은 더 심화되어진다... 지금 한국은 아프리카에서 와서 집회를 하고 간 데이비드 오워 때문에 혼통 시끄럽다고 한다. 그는 아프리카 케냐 사람으로 우간다와 케냐에서 대학을 마치고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에서 유전자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다. 그는 목사가 아니고 다만 직접 계시를 받아서 예언 사역을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선지자라고 따른다. 그가 한국에 와서 집회를 하는 동안에 꿈에서 받은 계시를 말했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2개월 내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이것이 이메일과 텍스트 문자로 한국 전역에 천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물론 회개의 메시지는 들어야 하고 또한 강조되어야 한다. 회개하는 것은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서도 해야할 이지만 또한 나귀의 말을 듣고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회개라는 성경적인 메시지에다가 직통계시를 받아 한다는 자기주장에, 애매모호한 예언,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예언은 성경적 예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을 하셨다. 주님은 깨어 있어서 분별하고 속지말라는 말씀하셨다. 혼돈의 시대는 미혹함이 극에 달하게 된다 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24:4,5,11, 24)”하셨다. 짧은 단락 속에서 미혹이라는 단어를 4번이나 사용하셨다. 24절에는 심지어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 하리라 하셨다. 자신이 그리스도라 라고 하는 거짓 그리스도가 많은 사람들을 미혹케 하고 (5절), 자신이 선지자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리라 (11절) 하셨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시대에서 보고 있지 않는가? 
지금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혼돈은 약한 영의 하수인들이  일으키는 사건들로 하나의 예고편이다.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하고, 가짜 재림, 가짜 재앙, 가짜 영성, 가짜 신앙을 자꾸 터지게 해서 정말로 중요한 진리를 듣지 못하게 하려는 악한 사단의 시도들이다. 가짜 재림 사건은 진정한 재림의 메시지를 듣지 못하게 하고, 가짜 영성은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 성령님의 역사를 거부하게 하려는 적어도 성령님의 역사에 거부감을 갖게 하려는 사단의 고도의 전술이다. 가짜 영성의 시대에 사는 우리를 위해서 진리와 은혜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와 일하심을 믿고 또 사모한다. 성령님께서 교회를 깨우시고, 목사들을 깨우시고, 영적 지도자들을 깨우시고, 모든 성도들을 깨워주시기를 갈망한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조명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혼돈을 극복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8/1/2010             성경에 사용된 언어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많은 시대를 거쳐 기록이 되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읽혀지기 위하여서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서 기록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성경의 언어는 무엇일까?
구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성경은 약 1600여년간에 걸쳐서 기록된 책이다. 구약은 모세의 시대인 주전 1500여년경 부터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의 시대는 주전 400년 경에 끝난다. 그후에 예수님이 오시고 신약성경은 마지막 저자인 사도 요한의 시대 주후 100년경에 완성된다. 이 기간 동안에 세계의 언어도 바꾸어지게 된다.
예수님 당시의 말하는 언어는 아람어이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아람어들이 간혹 등장한다. 그런데 신약 성경은 그 때 당시의 세계 통용어인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물론 헬라어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고전 헬라어, 코이네 헬라어, 비잔틴 시대의 헬라어, 현대 헬라어가 있었다.
신약성경은 코이네 헬라어로 쓰여졌다. 주전 4세기경부터 헬라문화권의 맹주인 마게도냐의 빌립2세와 아들 알렉산더는 헬라어가 보급된다. 알렉산더의 세계의 정복과 헬라문화의 전승은 소아시아, 시리아, 팔레스틴, 이집트 내륙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로마가 헬라를 정복한 이후에도 세계적 공용어의 필요와 풍부한 언어 표현이 가능한 헬라어를 공용어로 사용했다. 주전 4세기 부터 주후 4세기까지의 세계 공용어를 코이네 헬라어라고 한다. 이집트의 톨레미 궁전에서도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을 히브리말을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서 헬라말로 번역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사용한 70인경 (Septuagint, LXX) 이다.
코이네 헬라어는 구어체와 문어체 코이네로 나누인다. 구어체는 서민들이 사용하던 통속적인 헬라어이고, 문어체 헬라어는 고대 헬라어 표현양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신약성경은 주로 서민들이 즐겨 사용하던  구어체 헬라어로 쓰여졌다. 주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누가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는 뚜렷한 문어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하나님은 복음의 확장을 위해 우리에게 주신 신약성경을 위한 온 세계를 통용할 세계 공용어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리고 세계적인 언어로 신약성경이 기록되게 하신 것이다.

 
7/25/2010            열왕기서에서 믿을 만한 다른 책이 있습니까 ?


새벽마다 역사서인 열왕기상을 묵상하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보통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는 잘 알지만 역사중에 나타난 왕들의 이야기는 의외로 잘 모른다. 물론 두 나라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또한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의 뒤엉킨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억하기 힘들다. 그래서 아침 묵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열왕기서에 보면 저자가 성경을 쓰면서 인용했다고 분명히 밝히는 자료들이 언급되어 있다. 무슨 책들인가? 그것은 솔로몬의 행장, 유다왕 역대지략,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 등이다. 또한 열왕기서에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참고한 것이 확실시 되는 책들도 있다. 그것들은 다윗의 궁전 비망록, 선지자 엘리야의 행적기, 선지자 엘리사의 행적기, 선지자 이사야의 행적기 등이다.
솔로몬의 행장이란 열왕기상 11:41에서 참고했다고 밝힌 책이다. 주전 9세기경의 문헌으로 추정한다. 이 자료에서 많은 내용들을 인용하는데, 솔로몬이 바로의 공주와 결혼한 이야기 (왕상3:1), 지혜를 구한 일 (3:4-15), 명재판 (3장), 솔로몬의 각료와 지방장관 명단 (4장) 성전건축과 봉헌 (6장, 8장), 스바여왕 (10장), 여로보함의 도주 (11장) 등이다. 아마 그의 지혜와 영광을 기록한 일종의 전기이었던 것 같다.
유대왕 열대지략은 15번이나 언급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과 이스라엘 역대지략과 같은 책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은 주전 730년경에 기록되었고, 유대왕 역대지략은 주전 590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정확한 연대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왕 역대지략은 17번이나 언급된다.
제목이 명시되지 않는 자료들도 역시 내용이 다른 자료들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저자가 성경을 기록할 때에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정확한 기록이 되게 하신다. 열왕기상을 통해서 주시는 새벽마다의 은혜를 사모한다.


 
7/18/2010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 (요6:35)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지칭하셨다. 사실 떡이라는 말은 번역이지 원래의 의미는 빵이라는 말이 된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의미가 강하지 않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의미 심장한 것이다.  떡(빵)은 중동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주식으로서 성스러운 것이었다. 아랍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떡이 한조각 떨어진 것을 보면 그것을 주워서 경의의 표시로 이마에 갖다 댄 다음에 사람들의 발에 밟히지 않도록  벽이나 바위 뜸에 조심스럽게 끼워둔다고 한다.
원주민들이 먹는 빵은 보통 둥글고 평평한 빵으로 그 두께가 1 cm 에서 3 cm 가량 된다. 이 사람들은 발효가 된 빵을 먹지 않고 부인들은 식사 때 마다 빵을 새로 굽는다고 한다. 오븐은 약간 볼록한 얇은 철판을 사용한다. 돌 서너개를 밑에 고여 놓고 철판을 올리고 밑에서 불을 지핀다. 부인들은 철판 오븐 위에 발효되지 않는 가루 반죽을 두껍고 크게 떼어서 올려 놓는다. 빵이 다 구워지면 마치 큰 팬케이크 처럼 보이는 땅이 된다.
유목민들은 천막 속에 바닥에 구멍을 파고 불을 피운다. 그리고 작은 돌맹이를 여러개 올려 놓고 빵을 굽는다. 아마 사라도 천막 안에서 아궁이 속에 올려 놓은 돌 위에다가 빵을 구워서 천사들을 대접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사자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성경의 상징 속에서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나타나신다. 예수님이 스스로 구약을 해석해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 하늘에서 매일 아침마다 주시는 기적이었다. 그들은 척박한 광야에서 만나를 먹음으로 살수 있었다. 이 만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말씀하여 주셨다. 우리도 만나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매일의 영적인 생명과 육신의 생명을 살아갈 수 있다. 예수님의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이다. 단어의 의미는 떡집이라는 뜻이다. 떡집에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만나를 매일 새롭게 주신 것 처럼, 떡을 매일 새롭게 만들어 먹는 것 처럼,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매일 공급받음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된다.
주님의 모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영적인 배고픔이 없는 큰 은혜를 누리자!


 
7/11/2010            세계적인 전염병 우울증


인생의 최대의 질문이고 똑 대답을 찾아야 하는 질문은 바로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이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성경을 주셨다.
그렇다면 첫째로 예수님은 누구신가?
마태복음에서도 또한 동방박사 이야기를 통해서도 반복되는 주제는 예수님은 누구이신가에 대한 대답이다.  1)예수님은 왕이시다 (2절). 본문에도 계속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심이 강조된다.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신 왕이심을 증거한다. 본문의 동방박사들의 첫 질문도 유대인의 왕이 어디계시뇨 이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질문에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심을 증거하신다 (27:11). 군병들의 희롱 (27:29), 예수님의 죄패 (27:37),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조롱도(27:42) 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신다 증거한다. 2)또한 예수님은 그리스도 이시다 (4절). 동방박사들의 질문을 헤롯은 그리스도이시라고 해석한다. 대제사장과 세기관들도 메시아 라고 (믹5:2) 해석한다. 예수님이 대제사장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질문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 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 라고 확인해 주신다 (26:63).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이시고 심판자 이심을 선언하신다. 3)예수님은 바로 그 한 다스리는 자 (미5:2, 마2:6)이시다. 우리 주님은 다스리는 자이시다. 왕이시다. 철장 권세를 가지신 심판주이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주재자이시다. 현대인은 왕, 다스리는 자 자체를 싫어한다. 현대인들은 제멋대로 자기 소견에 좋을 때로 행한다. 왕을 모심이 체질에 맞지 않다. 본문은 두명의 왕을 말한다. 헤롯 과 예수님이시다. 사람들은 이 둘 중에 하나를 모시고 산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다스리심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의 통치 방법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목자이시다. 목자는 돌본다, 보호한다, 먹이신다, 물을 제공하신다, 동행해 주신다. 목자가 함께 계시면 양이 염려할 것이 없다. 양은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이 세상의 최고로 좋은 존재가 목자이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시다. 목자는 사랑으로 다스리신다. 주님의 인도하심 받자.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자.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누리는 것들 무엇인가?
1) 동방박사들의 목적은 예수님을 찾는 것이다 (2절). 이것은 최고의 인생의 목적이다. 바른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박사들은 별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별의 주인을 찾는 것이다. 성경에 별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데 별의 상징 가운데서 가장 궁극적인 것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광명한 새벽별이시다 (계22:16; 2:28). 발람의 메시아 예언의 성취이시다 (민24:17,19). 2)예수님을 찾으면, 믿으면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신다. 목자를 모신 양은 망하지 않는다. 인도하심을 받는다. 인생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해서 찾아야 할 분이시다. 3)예수님은 목자로서 우리를 보호하신다. 동방박사들의 믿음이 귀하다. 그들은 별을 숭배하지 않는다. 그 별이 보여주는 예수님께 경배한다. 별을 추구하지 않고, 별이 보여주는 그분을 추구한다. 별의 주인에게 경배한다. 가장 귀한 믿음의 모습이다. 우리의 인생의 별은 무엇인가? 돈인가, 행복인가, 건강인가, 성공인가? 아니다. 우리의 별을 숭배해서는 안된다. 인생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4)목자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우리는 말씀으로 깨우침을 받게 된다. 동방박사들은 가장 아름다운 신앙인의 여정을 보여 준다. 이들의 기대 헛되지 않는다. 아름답게 성취된다. 이들의 여정은 성경에 영원한 기록으로 남는다.
동방박사 이야기를 기록한 마태의 의도가 무엇인가? 성령님은 우리가 바로 바로 동방박사들과 같다고 하신다. 우리는 동방박사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서 무엇을 추구하는가? 땅을 쳐다보고 사는 삶 보다 별을 보는 인생은 더 낳다. 하지만 그 이상의 생이 있다. 그것은 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별의 주인이 되시고 창조자가 되신 예수님을 바라고 사는 생이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인생의 복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진정한 보화를 가진 사람이고 또한 진정한 행복한 자들이다.


 
7/4/2010            건전한 자아상


요즈음 처럼 힘들다 보면 자존감이 많이 상하게 된다. 신경이 예민하여서 조그만 일에도 마음이 상한다. 오가는 말도 거칠어지기 쉽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살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리스 신화에는 나르시스라는 아름다운 소년이 나온다. 그는 산의 요정인 에코의 사랑을 포함하여 모든 사랑을 거부한다. 그 벌로 그는 연못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된다. 그는 날이 가고 세월이 흘러도 자신만을 사랑스럽게 바라 볼 뿐이다. 나르시스의 신화는 현대인을 보여준다. 현대인들은 자기 사랑에 도취되어 산다. 자기 만을 사랑한다. 자신 만을 믿는다. 자신 만이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능력있다고 믿고자 한다. 자신의 영상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성경은 진실된 자아를 보여주시는 합당한 유일한 거울이다. 말씀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확인시켜주시고 또한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는 수많은 말씀들을 접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예술품이며, 창조물 중의 걸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하는 우리의 갈망이 해결이 된다.
또한 성경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무릎을 꿇게 한다. 예술품이  파괴되었고, 우리는 손상되었다. 오직 예술가 자신만이 느리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복원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때로는 우리가 회복되어 완전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이 모든 여정에서 우리를 넘치게 충분히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회복된 자녀들은 세상을 이기는 역설적인 인생을 산다. 타락했으나 용서받고,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옛 사람이나 새사람이고, 약하나 강하며, 가난하나 부하고, 죽었으나 산 존재들이 된다.
이 놀라운 은총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누리자!
메마른 땅에 이른 새벽에 주시는 은혜의 단비의 잔치로 초청한다.

 
6/27/2010             아버지없는 사회
 
아버지날을 맞는 우리를 경각시키는 경고가 있다. 현대사회의 가장 긴급한 최고의 위기는 우리의 사회가 ‘아버지 없는 사회 Fatherless Society’로 되어가는 것이다.
아버지 없는 가정의 문제는 심각하다. 미국에서 확인된 자료들을 보면, 자살하는 젊은이들의 63%는 아버지없는 가정에서 온다.  노숙자나 집을 떠난 자녀들의 90%는 아버지 없는 가정 출신이다. 노출증 행동 장애의 85%가 아버지 없는 가정이다. 강간범의 80%가 아버지 없는 가정의 분노에서 동기되었다. 고등학교를 포기하는 학생의 71%가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온다. 청소년 약물중독의 모든 환자 중 75%가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온다. 청소년 보호소의 70%가, 또한 감옥에 수감된 청소년의 85%가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온다.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경험하는 문제는 더 확산된다.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자란 딸이 아버지없는 아이를 낳을 확률은 164%이다. 10대 임신한 소녀들의 71%는 아버지 없는 가정이고,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자란 딸들이 이혼할 확률은 92%이다.  또한 10대 살인자들의 72%가 아버지없는 가정출신이고, 아버지 없이 자란 아들은 범죄할 가능성이 2배가 많고, 아버지 없는 딸들의 53%가 10대에 결혼을 한다. 아버지없는 자녀들이 심리적 정신적 도움을 구할 가능성이 2배가 된다.
이러한 통계들이 의미하는 것은 엄청나다. 아버지 없는 가정의 자녀들은 자살 가능성이 5배가 높고, 가출할 가능성이32배나  높고, 행동장애를 일으킬 확률은 20배가 높고, 10대엄마가 될 가능성이 6.6배가 높고, 강간할 수 있는 확률이 14배가 높고, 고등학교를 그만둘 확률은 9배나 높고, 약물중독에 빠질 확률은 10배가 높고, 주가 운영하는 청소년 보호소에 갈 확률이 9배가 높고, 감옥에 갈 확률은 20배가 높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 대한 대책은 없는 것인가? 먼저 아버지들이 깨어야 한다.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으로의 권위가 회복되어야 한다. 아버지의 권위가 세워 질 때 그 가정은 행복해진다. 어머니는 자녀들 앞에서 아버지를 존경하고 높여 들여야 한다. 영적권위도 주어진 (given) 것이 아니라 얻어진 (earned)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잠23:22,24)”

 
620/2010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이는 사람이 가지는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시며 또한 존재하신다면 어떤 분입니까 하는 질문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질문이고 또한 반드시 대답을 가져야하는 질문이다.
성경은 사람의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이심을 가르쳐 주시는 책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말씀해 주신다. 비록 우리의 지혜나 정신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성경은 우리로 하나님을 경험케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라고 하신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름이다 (출3:14-15). 여호와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자존자이시다. 누구에 의하여 만들어지신 분이 아니고 모든 것과 독립하여 계시는 절대 주권자이시다. 성경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이 쓰일 때마다 자신을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내신다. 여호와는 자기 백성과 능동적으로 함께하신다. 여호와는 자신을 계시하신다. 출애굽기 34:6-7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고 거룩하기에 그 이름을 ‘주’라고 부르기를 시작했다. 가장 많이 사용된 이름이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초월자 능력자 전능자 창조주 이심을 말한다. 하나님의 권능을 이야기할 때에는 하나님을 사용한다. 그 외에 하나님의 이름은 많다. 엘로힘 (하나님, 창1:1), 엘샤다이 (하나님 전능자, 창35:11), 아도나이 (주, 주권자, 창15:2), 만군의 여호와 (야웨 사바옷, 주 전능자, 시24:10), 카도쉬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시71:22) 등 많이 있다.
그외에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사람들의 고백들이 많이 나온다.
이번 주간에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들을 조사해 보고 묵상하여 나의 신앙으로 고백하자.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매우 복된 일이 될 것이다.

 

6/13/2010            2012년 종말론이 무엇입니까?

과연 2012년에 지구의 종말이 오는가? 헐리우드 영화 2012 가 개봉되면서 그리고 Y2K의 종말론 뒤에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는 지구 종말론이다.
첫째로 2012년 종말론의 근거로 마야문명의 달력이 기원후 2012년 12월21일에 끝난다. 지구는 6번째 태양이 사라지는 날 종말을 본다고 한다. 둘째로 2012년 종말론의 근거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다. 암호 같은 그림 속의 어린양이 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희생양을 의미하며 이것이 곧 지구의 종말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셋째로 2012년의 종말론은 중국의 주역의  예언을 근거로 한다. 2000년 미국의 과학자 테렌스 메케나는 주역을 수리적으로 분석해 시간의 흐름과 64 괘의 변화율을 그래프로 표시하고, 이러한 그래프를 ‘타임 웨이브 제로(time wave zero)’라고 이름 붙였다. 그래프가 상승한 시기에는 영웅이 등장하거나 새로운 가 탄생했으며, 또한 하강한 시기에는 인류사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거나 국가가 멸망했다는 것이다. 이 그래프는 어느 시점에서 0이 되는데, 이 날이 바로 2012년 12월 21일이라고 한다. 넷째로, 태양계의 감춰진 행성 엑스(X)가 2012년 지구와 충돌할 거라는 천문학적인 예측을 한다. 다섯째로 태양 폭풍설이다.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2012년~2013년에 태양 활동이 최고조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여섯번째로 인터넷 상의 모든 자료들을 조합해서 분석하는 프로그램인 웹봇의 예언이다. 웹봇이란 전 세계 인터넷상의 모든 자료들을 모아 핵심적인 단어들을 조합해 언어 엔진을 통해 다양한 과정을 거쳐 주식 시장의 변동을 그래프로 예측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엡봇이 예측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바로 2012년 12월 21일이라고 한다. 일곱째로 또한 일부 학자들은 수마트라의 토바호에 있는 지구 최대 화산이 2012년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여덟번째로 파푸아 누기니의 후리족 전설을 포함해서 많은 토속 부족의 전설들이 2012년을 종말의 해로 이야기한다. 그 외에도 뉴에이지는 이 기간을 긍정적 물질적 혹은 영적인 변화의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기독교이단인 헤롤드 캠핑은 2011년을 종말로 본다. 하지만 이미 살펴 본 것 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것이 하나의 기우라고 주장한다.
성경적으로 볼 때에 우리는 시한부 종말론을 믿지 않는다. 주님은 재림의 징조를 가르쳐 주시면서도 그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 하셨다 (행1:7). 또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하셨다 (마24:36). 이 시대는 2012년 종말론은 아닐찌라도 예수님 재림의 징조들이 그랜드 스케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이야말로 자다가 깰 때이다. 잘못된 시한부 종말론, 세상적인 세기말적인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로 알고 깨어 있기를 원하시는 바른 성경적인 종말론으로 무장할 때이다. 재림의 멧세지를 희석하려는 사단의 의도를 뒤엎는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재림신앙으로 무장할 때이다. 깨어나자. 그래서 성령님이 오늘날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자!


 

6/6/2010              집중새벽기도에 성공하는 방법

내일부터 한주간 새벽기도회를 함께 드린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제목을 가지고 나와서 기도하실 것을 기대한다. 이번에는 누가 개근을 하실까 기대해 본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귀한 계기가 될 것을 믿는다.

기도에 성공하려면 먼저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불평과 불만은 마귀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 새벽기도는 어려울 것이다. 2) 왜 공연히 사람들을 볶아대느냐? 3)나는 새벽기도에 자신이 없다. 4)새벽기도 한다고 달라질 것이 무엇이냐? 5)나는 잠이 많아서 새벽에는 죽어도 못일어난다. 6)나는 교회가 멀어서 못나온다. 7)의례적으로 하는 것이니까 신경쓸 일이 없다. 8) 나는 건강이 좋지 않으니까 새벽기도 나오라는 것은 교회 다니지 말라는 뜻이다 9) 방관적인 태도, 특히 직분자의 방관적인 태도는 버린다 등등…

새벽기도에 성공하려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1) 전투적인 자세를 가진다. 그렇다 새벽기도에 나오기까지 영적전투는 치열할 것이다. 시작도 하기전에 두손 들지 않기를 소원한다. 2)온교인 새벽에 기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3) 기도응답의 체험을 상상해 보라.  4)아침에 성도들과 반갑고 즐겁게 인사 나누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5)기도에 관한 구절을 매일 암송하고 묵상한다. 6)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는 방법임을 믿고 되새긴다.

새벽기도에 나오기 위해서 준비할 것들이 있다. 1)새벽기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조정하라. 2)밤늦게까지 작업이나 공부를 하지말라 3)TV, 컴퓨터, 오락 등에 관심을 줄이라. 4)체력을 소모하는 운동을 삼가한다. 5)직장인은 일찍 귀가를 한다. 6)저녁에 하는 소일거리들은 아침으로 바꾼다. 7)장거리의 출근하는 직장인은 출근 준비를 하고 교회에 나온다. 8)알람이나 벽시대를 너무 의존하지 말라. 성령의 함께하심을 믿고 기대하라.

우리 주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하여 오신다. 주님을 약속장소에 혼자 계시게 하지말고 우리도 은혜의 자리로 나오게 되길 원한다. 이번 한주간이 우리에게 영적인 각성과 생애가 가장 소중한 시간들로 주님께 기억되고 바쳐지길 축복한다.


 
5/30/2010          천안함 후폭풍

한국이 천안함 후폭풍 때문에 초긴장 사태이다. 천안함 조사 발표 이후에 세계적인 호응과 연대를 이루고 있지만 남북한의 관계는 급속하게 경색되어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대한민국정부는 천안함 침몰이 ‘대한민국을 공격한 북한의 군사도발’로 규정했다. 앞으로는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적극적 억제 원칙’을 견지할 것이라며, 다시 도발하면 즉각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대국민 담화에서 앞으로 우리의 영해, 영공, 영토를 무력 침범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북한은 반드시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며,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단호히 조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북한이 이번 사건에 대한 사과와 책임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면서 북한의 사과와 유엔 안보리 회부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북한의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선거와 맞물려서 정국의 더 혼돈이 된다. 선거전에 미칠 영향 때문에 북풍과 노풍의 논란이 거세다. 더욱이 북쪽의 위협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한치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국으로 몰아간다. 이 사건을 통해서 나라 안에 있는 큰 시각의 차이이다. 천안함 사건을 보는 시선도 그렇지만 그 평가를 보는 시선도 많이 다르다. 
정말로 기대하고 소원하는 천안함 후폭풍이 있다. 북한의 정권을 잡은 자들이 회개하는 것이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기도한다. 힘을 주신 것은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힘과 권세를 주셨을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용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데로 편을 짜고, 내 편이기 때문에 내가 잘못해도 내말을 들어주어야 하는 편짜기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다.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상대를 죽이고 모함하는 것은 죄악이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권모술수가 남무하고 상대방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세상은 좋은 사상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두움의 권세가 역사하는 변화되어야 할 세상이다.
또한 천안함 후폭풍으로 북한의 복음화가 일어나기를 갈망한다. 이것은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제목이고 열망일 것이다. 북한에 복음을 증거하기에 몸부림치는 귀한 종들이 있다. 북한의 지하에서 예수를 믿으며 신앙을 지키는 그 분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하심을 기도한다. 이러한 천안함 후폭풍을 일으키기 위해서 특별히 북한과 북한의 동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다. 북한에 복음이 들어가고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한반도가 주님 안에서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일이 일어나기를 소원한다. 성령이 일으키시는 천안함 후폭풍을 기대하며 우리의 기도의 무릎을 꿀어야 할 때이다.

 
5/23/2010             숯불을 그 머리위에 쌓아두라   (롬 12:20)

그러므로 네 원수가 주리거든 그를 먹이고 그가 목마르거든 그에게 마실 것을 주라. 그리함으로 네가 그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으리라(롬 12:20). 이 말씀은 잠언25:21-22을 인용한 것이다. 이 말씀은 원수에게 먹을 것, 마실 것을 베풀어 주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같으며,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상을 준다고 하신다. 어떤 사람의 머리 위에 핀 숯을 올려 놓으면 화상을 입어 크게 다친다. 그래서 대부분 이 말씀을 “원수에게는 선행을 베풀고 잘 해 주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라는 식으로 해석한다.
1) 어떤 사람들은 원수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그에 대한 최대의 보복이다.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복수는 하나님께 맡겨라. 원수에게 선을 베풀수록 하나님이 그의 머리 위에 진노의 숯불을 하나씩 쌓아두심으로 복수하게 된다는 해석이다.
2) 또 다른 해석은 핀 숯은 성령의 불을 의미하며, 핀 숯과 접촉하는 것은 회개를 의미한다. 이사야 6:6-7에서 스랍이 핀 숯을 이사야의 입술에 대어 불법을 제거한 것처럼, 원수에게 선을 베풀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원수가 회개하게 된다고 한다.
3)또 이런 해석도 있다. 혹은 핀 숯을 머리 위에 올리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이처럼 원수에게 선을 행하면 원수가 스스로 낯이 뜨거워져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기 죄를 깨닫게 될 것이다. 대부분 이 말씀을 “원수에게 선을 베풀면 그 선행 덕분에 원수가 스스로 회개하게 된다”거나 혹은 “하나님이 그에게 심판의 불로 처절하게 앙갚음을 해 주신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4) Wuest에 의하면 당시의 사람들의 풍습을 설명한다. 동방세계는 난방과 취사용으로 화롯불을 종일 유지해야 하는데 (호7:6) 불을 꺼뜨리면 이웃에 가서 숯불을 빌려와야 한다. 숯불을 건네주면 화로를 위에다가 이고 집으로 간다는 애굽의 풍습에 대한 전승도 있다. 원수의 집에 불씨가 꺼진 모양이다. 그 사람도 나에게 잘못한 일이 있으니 되도록이면 우리 집에는 불씨를 얻으러 오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찾아간 수많은 집에서는 모두 거절을 당한 모양이다. 그의 처지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었으면, 마지막으로 가장 숯불을 안 나눠줄 것 같은 사람, 즉 원수지간인 나에게 불씨를 얻으러 왔겠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 그를 매정하게 대하지 말고 원수가 머리에 이고 온 화로에 숯불을 쌓아주는 것이 원수에게 먹을 것, 마실 것을 나누어 주는 것과 같은 선행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선행에 대해 보상을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원수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마 5:44), 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고 머리 위에 숯불을 쌓아주는 친절을 베풀어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다.

 
05/1/2010               사막화 시대

사막화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사실 전세계가 사막화의 공포에 떨고 있다. 사막화 현상을 방지해 보기 위해서 UN은 2006년도를 ‘세계 사막과 사막화의 해’로 선포하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려고 시도했다. 유엔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지구 전체의 육지 중 38% 이상이 사막화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나라로 따져도 11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10억명 이상의 인구가 사막화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지구 전체의 사막화현상은 점차 확대되어가고 있으며, 북미, 중동, 오스트레일리아, 중국의 남서부, 인도, 남미의 서쪽을 포함한 전 세계의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다.
유엔사막화방지기구 (UNCCD)는 식량 및 식수 부족 사태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남미 브라질은 물론이고 아르헨티나도 300만㎢의 전체 국토 가운데 175만㎢에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막화 현상으로 2025년까지 아프리카에서는 기존 경작지의 2/3가 불모지로 변하고, 아시아에서는 1/3, 남아메리카에서는 1/5의 땅이 비슷한 처지로 전락할 것으로 내다 보았다. 아마존 정글 황폐화도 2년사이에 40% 빨라졌다고 한다. 유엔은 경고하기를 우리가 지금 사막화 현상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면 2025년에는 세계의 70%가 사막화가 될 것이라고 예고를 했다. 그렇게 되면 물로 인한 전쟁도 불사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환경의 사막화도 환경의 문제만이 아니라 영적인 현주소이다. 땅의 사막화보다 더욱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의 삶에 일어나는 영적 사막화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원래 부패한 것이고 우리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전적인 타락을 했다. 성도의 세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들의 마음에는 생수가 말랐고, 우리의 눈에는 눈물이 말라 버렸다. 성도라는 이름은 있는데 하나님 대신 세상을 추구하고, 종교다원화, 세속주의의 물결 속에서 갇혀 버렸다. 교회와 세상의 엄연한 차이는 없어지게 되었고, 세상인지 교회인지 구별하기 힘들게 되었다. 성도들은 복음의 능력을 잃어 버렸고,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교회이면서 주님을 떠나보내고 빈 껍데기만을 자랑하게 되었다. 영적인 사막화는 성도를 무기력하게 한다.
영적인 사막화는 멸망으로 치닫는 이사야와 예레미아 시대의 현상과 흡사하다. 영적인 사막화를 되돌이킬 방법이 무엇일까? 메마른 시대를 극복하는 비결은 눈물이다. 목회자들의 눈에서 성도들의 눈에서 회개의 눈물이 회복될 때에 영적인 사막화는 멈추게 된다. 회복된 눈물은 주님의 긍휼의 대상이 된다. 먼저 나의 영적인 사막화가 멈추어져야한다. 이 시대의 영적 사막화를 멈추게 하시는 성령님의 단비가, 주님의 생명샘의 터짐이 내 심령 속에서 먼저 일어나게 되기를 갈망한다!

 

5/9/2010             좋은 습관을 심어주자


습관이라는 것은 참 무섭다. 3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벼룩은 체구는 작지만 엄청난 높이까지 뛰어 오를 수 있는 점프력을 가지고 있다. 그 점프력은 세계 최고이다. 보통 벼룩은 방해를 받지 않을 경우 방 천장 높이까지 뛰어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자기 몸집의 몇번배의 높이를 뛰는 것이다. 그런데 그 벼룩을 잡아서 병 안에 넣고 뚜껑을 닫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벼룩이 아무리 날고 뛴다고 해도 병안에서는 병 뚜껑의 높이 밖에 뛰지 못한다. 그렇게 하기를 몇시간만하면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병안에 갇혀 있는 벼룩들을 꺼내 놓아도 정확하게 병 뚜껑의 높이 만큼 밖에 뛰어 오르지 못한다. 잠시 갇혀 있던 습관에 길들여져 천장 끝까지 뛰어 오르던 벼룩의 점프 실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습관이 그 정도로 중요하다. 사람들도 습관의 영향을 받는다. 자기 몸에 익숙한데로 생각하고 익숙한데로 행동한다. 익숙한데로 파악을 하고 익숙한데로 일한다. 습관이다. 따라서 좋은 습관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래서 옛말에도 자식을 키우려면 지식을 가르치고, 큰 인물로 키우려면 좋은 습관을 가르치라 했다. 성경에도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부모의 습관을 자녀들이 배운다. 부모의 습관에 자녀들이 영향을 받는다. 자녀들은 우리의 말을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습관을 보고 배운다. 내가 자녀에게 보이는 습관은 무엇인가? 좋은 습관인가? 아니면 배워서는 안되는 잘못된 습관인가? 자녀들에게 좋은 습관을 심어주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 먼저 나의 습관을 바로 잡자.


 
5/2/2010            제25회 세계한인목회자세미나

해마다 세계의 디아스포라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개최되는 미주크리스쳔신문사가 주최하는 제25회 세계한인목회자 세미나가 아프리카 케냐 나이보리에서 열렸다. 이번에는 “이 시대에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라는 주제로 모였다.
이번 모임은 아프리카 선교를 위한 거대한 도전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시는 역사를 이루어었다. 1900년도까지는 유럽의 성도들이 세계 기독교인들의 80%를 차지하고 있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은 개발도상국의 기독교인들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특별히 모슬렘이 유럽교회 약해짐을 틈타서 유럽을 장악하려는 엄청난 노력을 하고있다. 더구나 기독교의 선교역사보다 더 긴 역사를 가지고 모슬렘이 아프리카를 남하해 오고 있다. 선교의 전문가들은 케냐를 중심하여 같은 위도상에 있는 나라들이 무너진다면 모슬렘이 아프리카를 장악하게 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아프리카 선교와 유럽선교의 위태로운 시점에서 아프리카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케냐를 중심하여 인근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이 참으로 많은 위로와 격려를 얻는 복된 모임이었다.
나 역시 아프리카에 처음이었다. 그런데 도착하면서 부터 떠나는 시간까지 순간 순간 마음의 감동과 은혜를 주셨다. 아프리카 선교사님들에게서 흔히 듣던 말들 이 아프리카 사람들의 해맑은 눈동자들 때문에 아프리카를 떠날 수 없다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선교지 교회를 방문하여서 3시간 가까운 예배를 드렸지만 춤추며 찬양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리고 지나치면서 만났던 수 많은 아이들의 얼굴은 두고 두고 눈에 선할 것 같다.
아프리카 땅을 누가 저주의 땅이라 했는가? 결단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이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선교사님들과 함께 하심을 체험케 했다. 또한 이 선교사님들을 돕는 숨은 손길들이 하늘나라와 이 땅에서 누릴 은총들을 축복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프리카 땅을 밟은 이후 강의를 준비할 때에도, 강의 때에도, 강의 후에도 내가 아프리카 땅에 있는 동안에 주님은 내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고 찬양이 그치지 않도록 하셨다.
이번 세미나를 준비하시고 주관하시는 미주크리스쳔 신문사와 금년의 케냐에서 모임을 섬겨주신 모든 분들에 다시 감사를 드린다. 주님을 사랑하여 아낌없이 헌신하며, 영혼을 사랑하여 섬기는 주의 신실한 종들에게 약속된 아름다운 상급을 믿으며 마음껏 축복한다.

 
4/18/2010            772 천안함 장병 희생자들

온 세계의 시선을 모으던 천안함 인양 작업을 통해서 천안함의 함미 부분이 해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희생자 유족들의 눈물의 부르짖음과 온 국민의 안타까움에 진행된 작업이었다. 모두 46명의 젊은이들이 생명을 잃었다. 뜨거운 피가 식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수고하던 잠수부도 생명을 잃었다. 또한 어부들도 생명을 잃었다.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헌신들이었다. 전쟁시도 아닌 평화의 시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생각이 든다. 한반도의 전쟁은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이들은 우리들의 아들들이고 형제들이고 나라의 영웅들이다.
천안함 사건의 원인은 함미의 절단면의 감식결과 어뢰에 의한 외부 폭팔이라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조사의 진행을 통해서 더 밝혀지리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을 지목하고 있다. 전세계의 언론 역시 조심스럽지만 앞으로의 사태의 진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한의 공격일 것이라는 가능성은 이번에 죽은 장병들을 전사자로 예우하는 이유일 것이다. 지난 2002년의 연평대전에서 북한은 함대함 전투에서 참패한 이후 해군력으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게릴라전을 위해서 소련의 어뢰기술 그리고 이란의 스텔스식 어뢰를 보유하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스텔스 어뢰는 레이다에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북한은 반잠수정 계발을 했다. 미국과 선진국들이 한국의 천안함 사건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은 이런 무기들을 외화벌이를 위해서 중동에 잠수정과 기술을 판매할 위험이 매우 높이 때문이다.
이번의 구조 작업을 위해서 해군뿐 아니라 민간업체들과 어부들도 힘을 다했다. 마음을 다 했다. 우리 나라에 여러가지 위기들이 있었지만 마음을 합하여 바라본 사건 중의 사건이다.
어려운 일을 당한 유족의 마음은 어떠할까 하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나라를 위해서 헌신한 이들의 남은 유족과 조국에 하나님의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도한다. 이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고 조국의 바다를 지키고 나라를 세우는 귀한 기초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고귀한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은 남은 우리들의 몫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를 지키는 것은 사명 중의 사명이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우리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어려운 시기에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강건케 하심과 승리케 하심을 축복한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하는 헌신을 늘 드리기를 소원한다.

 
4/11/2010             신앙 전수하기

우리들의 자녀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어릴 때의 생각만 했는데 이제는 키도 훌쩍 커지고 목소리도 변성되어지고 몸과 마음이 부쩍 자라가는 모습들이 참으로 가슴이 뿌듯하다.
우리 교회 중고등부의 경배찬양팀이 참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받는다. 음악적으로 뿐 아니라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모습들이 참 대견하다. 이들이 많은 청소년들이 모이는 GKYM 집회에도 찬양을 하고, 또한 다른 교회에 수련회에 초청을 받아서 가서 경배찬양을 인도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이들을 귀하여 사용하여 주실 것을 믿는다. 그런데 경배찬양팀이 12학년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중고등부를 졸업한다는 것이다. 부모로서 이들이 교회 가까이 머물면서 믿음생활을 계속 증진시켜 갔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다. 언젠가 이들에게 동생들 중에서 경배찬양팀을 만들어 미리 준비시키면 좋겠다고 했다. 그후 발견한 것은 경배찬양팀의 형들이 금요일과 토요일에 시간들을 내어서 동생들에게 악기훈련도 시키고 기도훈련도 시키고 하는 것이다. 얼마나 마음이 기쁜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마치 경배찬양팀을 세우기 위해서 훈련시키듯이 우리의 신앙도 자녀들에게 전수시켜야 한다. 그것은 먼저 부모들의 몫이다. 우리의 사명이다. 믿음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의 인생에 중요한 분인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신앙이 전수되는 것이다. 내가 불순종하면서 자녀들이 순종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교육 방법이다. 자칫 잘못하면 불순종을 전수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낀다.
신앙을 전수하여 더 나은 신앙인으로 사회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들어내는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나오게 하기 위하여 좋은 신앙을 전수하는 부모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믿음의 바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더 큰 교육은 없을 것이다.

 
4/4/2010              복원된 예수님의 얼굴

과학이 발달되면서 예수님의 얼굴의 모습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물살을 탔다. 얼마 전에 과학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발굴된 2천년전의 유골을 사용해서 살을 붙여서 사람 얼굴로 복원시켜 보았다. 또한 유대인의 회당에서 발견한 가장 오래된 유대인 얼굴 벽화를 중심으로 머리카락과 수염을 붙여서 2천년전의 사람의 얼굴을 재생시켰다. 중동인의 얼굴이었다. 이번에도 또한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진짜인가 가짜인가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는 토리노의 수의 (Shroud of Turin) 를 사용해서 얼굴을 복원해 본 것이다. 이 수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무덤에 들어가셨을 때에 예수님의 시신을 싼 세마포라는 주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의(壽衣)에 대한 논란은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고난과 부활의 사건 속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를 언급하고 있다. 마태복음 1회, 마가복음 2회, 누가복음 2회, 요한복음에는 4회가 나온다. 왜 세마포에 대한 이야기를 마태와 요한이 반복하여 강조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는 부활의 또 하나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토리노의 수의(Shroud of Turin)는 1978년 일반에게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세마포로 만들어진 수의는 길이 4.2m에 폭 1.1m로서 중간을 기점으로 대칭되는 한 중년 남자의 알몸 자국이 앞면과 뒷면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머리카락은 길고, 턱수염을 길렀다. 손목과 발에는 못 자국이 있으며 머리, 등, 옆구리, 등에서도 핏자국이 발견됐다. 예수님의 고난 당하신 성경의 기술과 일치한다. 심지어 피가 흘렀던 방향을 통해 십자가 처형의 단서를 얻어냈으며 피에 섞인 일종의 효소도 장시간 고통 속에서 죽어간 의학적 증거를 보여준다고 해설하기도 했다. 1988년에 탄소동위원소 검사에서 13-14세기의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최근에 검사 샘플이 원래의 세마포가 아니라 중세기에 보수된 부위라는 이야기로 논란거리가 되어 있다. 이런 와중에 4월부터 한달간 5번째로 공개된다.
물론 요한복음에 기록된 2천년전의 예수님의 세마포가 발견되었으면 좋겠다. 예수님의 세마포라는 증명이 되면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하심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성과 확실성은 토리노 수의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엄청난 양과 질의 증거들이 산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으로도, 상황적으로도, 법의학적으로도, 법정에서 재판을 한다고 해도 승소할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위에 교회가 세워져 있다.
토리노 수의에서 복원된 얼굴은 중동인의 얼굴이라고 한다. 또한 복원된 얼굴이 얼마나 주님을 닮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얼굴은 눈으로 보는 얼굴이 아니라 우리의 심비에 새겨진 얼굴이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영광 중에 그분을 기쁨 가운데 뵈올 것이다.

 

3/29/2010            고난주간의 예수님의 행적

일요일  개선의 날 = 1. 예루살렘에 입성하심  2. 무리의 반응과 예수님 우심          
                                    눅19:28-40            눅19:41-44
월요일   권위의 날 = 1.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  (마21:18-19, 막11:12-14)
                           2. 두 번째 성전을 깨끗이 하심 마21:12-17, 눅19:45-48
화요일   변론의 날 = 1.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 (마21:23-27, 눅20:1-8)
                           2. 경고의 세 가지 비유 (두 아들, 악한농부, 혼인잔치)
                               (마 21 : 28 - 22 : 14, 막 12 : 1 - 12)
                           3. 지도자들과 논쟁 (마24:25, 막13장, 눅21:5-38)
                           4. 예루살렘 멸망 경고 (마24:25, 막13장, 눅21:5-38)
                           5. 유다의 반역 (마26:14-16, 막14:10-11)
수요일   음모의 날 = 1.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
                               (마26:3-5, 막14:1-2, 눅22:1-2)
목요일   준비의 날 = 1. 유월절 식사 (마26:17-25, 요13:1-7)
                           2. 최후의 성만찬 (마26:26-29, 막14:22-25)
                           3. 예수님의 고별설교와 중보기도 (요17장, 요13:31-35)
금요일   수난의 날 = 1. 배반당하고 잡히신 예수님 (마26:30, 36-56,
                                                               막14:26, 32-52)
                           2. 공회앞에 서신 예수님 (마26:57-58, 눅22:54-55)
                           3.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심 (마27:21-31, 눅23:1-25)
                           4. 십자가의 죽으심 (마27:31-50, 막15:20-46,
                                                    눅23:26-54)
토요일   예비의 날 = 1. 로마병정 예수님의 무덤을 지킴 (마27:62-66)

주   일   부활의 날  = 부활하심 (마28장, 막16장, 눅24장, 요20장)


 
3/21/2010            요셉의 집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말씀 그 어느 한자도 의미없는 것이 없다. 우리가 단지 그 의미를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다. 오래 전의 일이긴 하지만 창세기를 읽으면서 요셉이 형제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유난히도  요셉의 집 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을 발견했다. 요셉의 집에 대한 언급이 창세기 43장에 7번, 44장에 2번이나 나온다. 물론 스토리의 전개에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요셉의 집 이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 이상스러웠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집트에서 고고학자들이 요셉의 집을 발굴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혼자 기뻐서 펄쩍 뛰었던 때가 있었다.
최근의 성경 고고학적인 자료를 통해서 고센땅의 요셉의 집의 증거들이 제시되었다. 요셉은 그의 아버지와 식구들을 고센 땅, 애굽의 좋은 땅 라암세스 (창47:11)에 주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 이름을 보고 출애굽의 역사를 라암세스 시대로 주전 1250년대로 잡는다. 최근에 David Rohl 박사의 의 바로들과 왕들 이라는 책에서 고센 땅에 있는 셈족속의 집들과 무덤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요셉은 애굽에서 형제들과 함께 110세를 산다 (창50:22). 요셉은 고센에 거대한 애굽식 궁전을 소유했었다. 발굴된 궁전은 왕의 궁전은 아닌데 하지만 매우 중요한 관원의 저택이었다. 그것은 야곱의 집 위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거대한 두개의 호화로운 방이 있다. Rohl 박사는 아마도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위한 처소라고 추정을 했다. 또한 요셉의 무덤이 발굴되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관의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성경을 보면 풀린다. 요셉은 죽은 후 그의 관은 애굽에 장사지낸다 (창50:26). 그러나 출애굽할 때에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간다 (출13:19). 또한 요셉의 궁전에는 정원무담이 있다. 요셉은 자기의 무덤에 관에 안장된다. 그 무덤은 고센 땅에서 가장 큰 구조물이다. 그런데 무덤이 훼손되는 일이 없이 시신이 보이지 않는다. 도둑이 들어서 파괴한 것이 아니라 아주 정교하게 조심스럽게 매장실에 들어가서 시신을 취한 것이다. 무덤을 발굴해 보니 요셉의 유골은 사라져 있었다. 바로 모세가 가나안으로 가져간 것일 것이다. 또한 요셉의 얼굴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무덤 안에서 흉상이 발견되었다 (창41:14). 요셉의 무덤에는 실물의 2배 크기의 상이 발견되었다. 셈족의 수염있는 모습이 아니라 수염을 깎은 모습이다. 그런데 코는 잘라진 상태이고 눈은 파버렸다. 머리는 눈에 보이도록 손상을 입힌 모습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출애굽 후에 애굽 사람들이 동상을 파괴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에 그들의 분노와 두려움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성경말씀의 숨겨진 비밀들을 열어주시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역사들은 주님이 오실날이 가까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의 강팍한 마음들을 뒤흔들어서 회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긍훌하심의 열매라 믿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더욱 더 사랑하자!

 
3/14/2010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 (막 11:12-13)

예수님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하는 분으로 생각된다. 마가복음은 때가 무화과 철이 아니었다라 하신다. 
본문은 고난주간 월요일에 일어난 일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베다니를 떠나신 후에 도중에서 시장하셨다. 멀리서 예수께서는 길가에 있는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가셔서 나무에게 무슨 열매를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쳐다보셨다. 그러나 그 무화과나무에는 무성한 잎사귀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니 곧 뿌리채 말랐다.
마태복음과 달리 마가복음은 철이 이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올라가신 때는 니산월(4월) 중간인 유월절 절기 때였다. 팔레스틴에서는 3월이 되면 무화과 나무에는 먹을 수 있는 조그마한 열매가 열린다. 그리고 뒤이어 4월이 크고 무성한 잎들이 나온다. 일찍 열리는 푸른 열매는 지방 소작농을 위한 일반적인 식물이었다. 작은 열매는 그해에 그 나무가 푸르고 무성한 잎사귀를 낼 것이라는 징조이었다. 작은 열매가 없는 것은 그해 열매가 없을 것이라는 표시이었다. 물론 이 작은 열매들은 무화가가 익는 5-6월에는 떨어져 버린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유월절(4월중) 직전에 비록 그때가 무화과 때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무화과나무에서 어느 정도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찾기를 기대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예수님의 무화과나무에 강하게 저주하신 것을 보고 시장하여 먹을 것이 없으니 신경질을 부린 능력을 남용한 케이스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은 믿음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기도 응답을 가르쳐 주셨다. 또한 누가복음 16:6-9 의 비유의 말씀을 배경으로 하면 더 분명해 진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오실 때 마다 이 무화과 나무를 눈여겨 보신 것 같다. 무화과는 보통 3년째 열매 맺는다. 그런데 열매를 3년간  더 참았다. 따라서 6년이 되도록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다. 과원지기는 한해를 더 기다려달라고 하였다. 7년이 되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로 생각하면 찍어 불에 던지는 것은 농부의 당연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더 나가서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다.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은 이스라엘 대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보여준 표징이었다. 잎은 많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총이 넘침을 말한다. 반면에 외적인 인상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영적인 불모성을 상징한 것이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처럼 예루살렘은 AD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하여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는 철저한 파괴를 경험한다. 그리고 2천년동안 유리하는 민족이 된다.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시지만 마침내 임하는 심판은 무서운 것이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은 주님이 오시는 날 또한 경험하게 될 것이다. 깨어서 신앙생활을 하자.

 
3/7/2010           모세의 예언 (창세기)

성경의 거의 모든 책에서 예언을 포함하고 있다. 구약의 16개의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체적인 예언을 하고 있다. 모세의 5경이라고 불리우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도 예외는 아니다.
모세의 5경에는 60개의 예언이 나오고 적어도 15개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다. 성경에 나오는 첫번째 예언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을 때에는 정녕 죽을 것이라는 예언이다 (창2:16-17). 그리고 두번째의 예언은 바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에 대한 예언이다 (창3:15).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은 뱀 (사단)의 머리를 치는 승리의 예언이다. 이것을 원시복음이라고 부른다. 여자의 후손 이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자연적인 방법이 아니고,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하여서 수태될 것이라는 동정녀 탄생을 의미한다 (마1:18; 눅1:34-35).
창세기에 나오는 중요한 예언 몇가지를 보자. 노아시대의 대홍수의 예언 (창6:7), 아브라함을 통해 세상을 축복하심 (창12:3), 가나안을 아브라함과 자손들에게 주심 (창12:7). 그리스도의 조상에 대한 대한 예언들 (창22:18; 창49:10-12), 특별히 이삭의 희생제물 (창22)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창세기의 예언은 4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대로 이루어져 있다. 중동의 긴장과 갈등은 이미 예언된 것이다. 이집트 태생의 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통해서 아랍민족이 이루어졌다. 이스마엘은 예언하신 그대로 거대한 민족이 되었다 (창21:13,18). 이삭도 예언하신 그대로 큰 민족이 되었다. 오늘이 이스라엘이다. 이 갈등은 아브라함 시대 사라와 하갈사이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창21장).
아브라함에게 하신 가나안 땅에 대한 수많은 예언들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수백년전에 예언된 것이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죽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을 헤맨 가장 큰 이유는 가나안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언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예언을 들었던 사람들 중에서 가나안 정복의 예언을 믿은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민14:20-35).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예언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루어진 성취를 믿는 것이다. 예언을 믿음으로 가나안을 정복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믿음으로 새하늘과 새땅을 차지하고 누리자!

 
2/28/2010           사나워진 환경

또 폭설이 내렸다. 몇주전에는 전세계가 폭설로 몸살을 앓았다. 뉴욕의 록클랜드에는 3피트의 눈이 내렸다. 지난 번에 내린 눈이 채 녹지도 않았는데 그 위에 또 쌓인 것이다. 포트 워싱톤에는 15인치가 내렸다. 환경도 점점 더 사나워져 가는 것 같다.
폭설로 눈을 치우느라고 땀을 흘리는 때에 지진이 세계 곳곳에 일어났다.   하이티에 7.0 지진이 임해서 수십만명이 죽는 참사가 일어났다.  27일에 일본 오키나와 인근의 태평양 연안에서 6.9 강도의 지진이 일어났다. 동시에 칠레 앞 바다에서 강도가 8.8이 되는 지진이 일어났다. 지난 1960년에는 9.5 강도의 지진이 있었다. 이번 지진후에 오는 여진 after shocks 들의 강도만 해도 6.9를 기록했다. 하이티에 임한 강도의 지진이 10번이상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칠레는 역사상 최악의 지진 10대 지진 중에 4번이나 일어났다.
우리는 지진강도 8.8에 대한 감각이 없다. 지진강도 7.0에서 8.0은 32배의 강도이다. 하지만 7.0에서 9.0의 강도는 64배가 아니라 무려 1000배이다.  다른말로 하면, 이번 칠레의 지진은 하이티의 지진의 천배의 강도라는 것이다! 지금 지구상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지진은 소위 전세계에 퍼져있는 불의 반지 (ring of fire) 라고 불리우는 지진대에서 일어난다. 이 거대한 서클은 남미의 연안부터, 서부 캘리포니아 연안, 씨애틀과 동계 올림픽이 하고 있는 뱅쿠버, 알라스카, 일본반도, 동남아시아, 그리고 태평양의 섬들로 연결되는 거대한 지진대이다. 지구를 구성하는 판들 (plates)이 서로 밀리면서 일어나는 지진 현상이다. 세계에 지금 일어나는 지진의 90%가 바로 이 ring of fire 에서 일어난다. 전문가들에 의하며 과거의 2천전보다 해마다 적어도 3배의 지진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것은 엄청난 숫자이다.
이번 지진의 피해가 끝이 아니다. 바다의 지진은 쑤나미를 동반한다. 태평양 쑤나미 경보센터 (PTWC) 에서는 러시아, 일본, 하와이, 멕시코, 필리핀 등의 전세계 태평양 전역에 쑤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이번 지진으로 더 이상의 어려움이 없기를 기도한다.
성경의 예언은 마지막 때의 환경도 사나워질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도 말세의 징조 중에 하나로 지진을 말씀하셨다 (마 24:7, 막 13:8: 처처에 지진. 눅 21:11, 처처에 큰 지진. 계 6:12 큰 지진. 계11:13: 성 십분지 일이 무너짐). 지진은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이루어질 예언이기도 하다. 지진은 우리의 시대를 분별하는 계기가 된다. 사나워진 환경은 우리를 괴롭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깨우시기 위하여 보내 주시는 메시지인 것 같다.
정말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믿음을 지킬 때이다.

 

2/21/2010            성경에 예언이 있나요?

사람들은 미래에 집착되는 존재이다. 관계, 직장, 건강, 행운, 죽음… 등에 대한 질문은 미래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미래를 예고하는 세가지 형태가 있다. 전문가에 의한 예상 혹은 예축으로 (Forecasting) 경험과 이해에 바탕을 둔 것이다. 또는 점술가 혹은 무당들이 하나님이 아닌 소스로로 부터 초자연적인 정보를 얻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 금지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예언자에 의한 예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받아 말하는 것이다. 전문가도 잘못되고, 점술가나 무당이 틀리는 것은 말 할것도 없다. 하지만 성경의 예언은 절대로 틀림이 없다. 성경의 예언은 모든 것을 테스트해 보고 확인해 볼 수 있다. 성경에 보면 천개 이상의 예언들이 있다. 이런 예언들은 사람에 대한 것, 장소에 대한 것, 혹은 사건에 대한 것들이다. 사람의 성공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가? 야구 선수가 4할대를 친다면 최고의 선수 중에 선수가 된다. 미식축구 경기를 한 시즌에 75% 예상하면 모두가 놀랄 것이다. 동전을 뒤집을 때에 60%를 알아 맞추면 최고의 경지이다. 미국 주식회사에서 1년동안 상승주의 70%를 예고하면 최고의 전문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예언은 성공율이 100%이다. 예언에는 실수가 없다. 우리의 눈에는 그것이 얼마나 기적적이든지, 얼마나 믿을 수 없든지 간에 모두 이루어진다. 예언은 시험해 보라고 하셨다 (신18:19-22, 살전5:21). 선지자의 예언은 선지자의 생애에 금방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수세기 후에 이루어진 것들도 있다. 예언에는 여러가지 type 이 있다. 어떤 예언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다. 어떤 예언들은 가리워져 있어서 이해와 통찰이 필요하다. 어떤 예언들은 2중의 의미를 가진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질 것과 미래의 같은 의미가 있다. 성경의 예언들은 하나님의 영향력의 증거이다. 성경의 예언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증거가 된다. 말씀을 믿자. 그리고 신뢰하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언제나 분명하게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살자.


 

2/14/2010            사순절이 무엇인가요?

이번 주 수요일 17일 부터 사순절이 시작된다. 사순절이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시기전 40일 동안을 가리킨다. 사순절 기간 동안에 주님의 지상 사역을 종료하시는 종료주일, 또는 종려 주일이 있다. 종려주일이 끝나는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한다. 고난 주간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하여 행하시며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기 까지의 한 주간을 말한다. 
40일 (6주간)의 사순절이 토의 된 것도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였다. 기독교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의미 있는 숫자이다. 예수가 40일간 금식하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으며(마 4:1-2), 노아 때엔 40일 동안 폭우가 내려 홍수가 지게 하였고(창 7:17),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간 금식을 했고(출 24:18), 엘리야는 천사가 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40일을 밤낮으로 걸어서 갔고 (왕상 19:8),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집트에서 400년간 노예 생활을 한 다음, 약속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40년간을 광야에서 보냈다. 사순절은 주님이 부활 하시기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했던 기간들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 가는 날이다.
사순절 기간이 40일로 처음 결정된 것은 313년 로마 제국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얻은뒤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다. 교회 역사 가운데에는 기간이 꼭 40일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동로마 교회에서는 부활절 준비 기간을 7주로 지키되 토요일은 제외하고 일요일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하신 주일만을 포함해서 36일을 사순절 기간으로 지켰다. 서로마 교회는 6주간을 지키되 주일을 제외한 36일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정해 지켰다. 사순절기는 니케아 종교회의 결정 후에도 오늘날과 같이 40일간의 절기로 지켜 지지 않았다. 또한 731년 샤률마뉴[charlemagne] 대제때에는 일년 365일의 십분의 일인 36일을 지키던 것을 4일을 포함하여 재 수요일날 사순절이 시작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40일간의 사순절을 지키게 되었다.
부활주일은 해가 시작되는 절기의 춘분 후 첫 만월이 지난뒤 다가오는 첫 번째 주일로 지켜지기 시작 했다. 8세기 이후로 가면서 사순절 기간동안에 지켜 지던 규례들은 많이 완화 되기 시작했고 14세기에는 금식과 기도보다는 절식기도가 행해 졌으며 15세기에 와서는 정오에 식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 관습이 되었다가 그뒤에는 연극이나 무용과 같은 오락을 금지하고 화려한 옷을 입는다던가 호화로운 생활등이 자제 되었다.  1517년 종교 개혁 이후 개혁자들은 형식적이며 의식적인 절차들 보다는 믿음을 중시하며 많은 의식들도 간소화 되었다.
사순절은 대속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그리스도가 격는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하여 부활주일 전 주일을 뺀 40일간을 경건하게 지내는 기간이다. 그러므로 사순절이란 부활 주일전 40일간을 정해 놓고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고 묵상하며 경건히 보내고자 하는 뜻의 절기이다. 사순절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총을 기대한다.


 
2/7/2010            하나님도 후회하시나요?

성경에 보면 상반되는 것 같은 표현들이 종종 나온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는데 (민 23:19, 삼상15:29, 시110:4, 롬11:29, 히 7:21) 또 다른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고 (삼상15:11, 창6:6-7) 하였다.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면 실수하셨다는 말씀인가? 노아시대의 사람들의 죄악이나 사울의 실패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씀이신가?
이는 하나님의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의인화된 언어로, 또는 신인동형론적 혹은 신인동감론적(anthropopathic, 신의 감정을 사람의 감정처럼 표현하는) 언어로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위하여 하나님의 행동과 감정을 사람의 행동과 감정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기에 인간의 실패를 미처 알지 못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은 마음을 변하지 않으신다 (삼상15:29). 하나님이 후회하신다는 말은 인간들이 스스로에게 행한 일들에 대한  강한 슬픔의 표현이다. 마치 부모가 반항하는 자녀를 보면서 강한 슬픔에 빠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와 은총을 택하는 대신에 죄를 선택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슬퍼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후회는 사람의 후회와는 다르다. 하나님은 잘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결정이나 하신 일에 대한 후회가 아니다.
먼저 후회로 번역된 히브리 원어를 살펴 보아야 한다. 번역을 통해 의미가 이상해졌기 때문이다. 창6:6의 후회한다의 원문의 의미는 나함 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헐뜩거리다. 신음하다. 숨이차다. 위로하다 의 뜻으로 쓰인다. 자신과 타인의 아픈현실을 통해 고통가운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비통해 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지고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서 동정심을 갖다 (삿21:6) 와 슬퍼하다 (출13:17) 란 말이 나왔다. 또 근심하는다는 말은 심령이 찢어지다. 찢어지는 마음의 고통으로 짓눌린다의 뜻이다. 따라서 후회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 놓고 괜한 일 했다고 후회스럽게 한탄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죄짓는데 앞장서고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여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자초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몹시 가슴아파 하심을을 말한다. 전지하신 하나님에게는 인간의 후회와 변덕이 없다. 삼상15:11에도 하나님께서 사울의 죄에 대하여 심판하실수 밖에 없는 가슴 아픈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홍수심판으로 세상을 끝내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어가신다.
라멕의 아들 노아의 이름의 뜻은 안위, 위로다. 바로 나함이란 단어를 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 이유가 하나님의 후회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무언가 잘못했고, 이를 다시 고치는 뜻으로서가 아니다. 위로하다는 뜻으로 보면, 하나님이 스스로 당신의 아픔을 위로하고, 남은자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새로운 구원사를 이어나가신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은 스스로 ‘나함’하시고, 노아(위로자)를 통해 구원사를 펼쳐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함을 통해서 마땅히 죄로 인하여 심판 당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을 향하여 새롭게 하시고 또 다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무궁함을 깨닫게 된다.

 

01/31/2010            예수님이 어떻게 생기셨을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질문 중에 하나이다. 사실 아무도 예수님의 실제의 모습이나 체격이나 외모에 대하여 아무런 정보가 없다. 왜 그런가? 초대교회 시절에 우상이나 조각이나 새기는 형상을 엄격하게 금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3세기경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때에는 예수님은 수염이 없는 모습이었다. 전통적인 수염을 기르신 예수님의 모습은 4세기경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수염을 가지신 모습이 12세기에 이르러서는 예수님의 조각들, 그림들, 부조들에 활발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추측해 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예수님이 나이가 좀 들어 보이셨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한복음 8:57에 유대인들이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한다. 나이 30대 초반의 예수님을 보고 50대 운운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나이가 들어 보였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사야 53장 2절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하신 말씀으로 볼품없는 외모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화가들과 예술가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멋있는 젊은이의 얼굴로 그린다. 사랑하는 주님을 아름답게 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유럽인들은 예수님을 푸른 눈을 가지시고 흰 피부색깔을 가지신 모습으로 그렸다. 가장 멋있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실제의 모습은 지금의 중동인들과 흡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색 진갈색의 눈동자를 가지신 모습 말이다. 최근에 들어서는 그림에도 상황화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자기 민족과 비슷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그린다. 한국에도 유명한 화가들이 삿갓을 쓴 예수님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흑인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다. 인도사람들은 인도사람처럼 그린다. 그런 그림들을 보면서 약간은 어색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한 친숙함도 동시에 느낀다. 어찌하든지 예수님의 겉모습이 알려 주시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의 육신의 모습을 안다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닮은 모습을 하겠다고 성형수술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실 때의 모습이 어떤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하다면 가르쳐 주셨을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시면서 부활의 몸을 가지셨다. 시간과 공간과 환경의 지배를 받지않는 부활체로 바꾸어지셨다. 막달라 마리아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도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신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도 또한 예수님처럼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영광스러운 몸을 입을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마음과 성품을 본받는 것이다. 찬송가 가사처럼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자” 되기를 원한다. 주님의 인격을 본받아 온유와 겸손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갈망한다.


 

01/24/2010          하이티의 부두교   

이번에 하이티의 지진의 사건은 부두교의 존재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은 지난 2천년 역사 가운데 최악의 사건이라고 말한다. 사망자 역시 2십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어떻게 카톨릭이 75%이고 개신교가 15%인 이런 나라에 이런 재난이 임할까? 하지만 하이티를 지배하는 종교는 부두교(Voodoo) 이다. 부두는 아프리카 토속 샤머니즘 으로서 마귀가 강하게 역사하는 종교이다. 주로 짐승을 잔인하게 죽이고 피를 뿌리며 제사지내나 가끔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친다. 부두교는 수백년 동안이나 사람들을 사로잡아왔다. 부두교는 조상신들과 아프리카 정령들을 숭배하고 점술과 신비한 마술 의식과 신접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악하고 사탄적인 것이다. 부두라는 단어는 서아프리카어로 영혼이라는 뜻의 단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원래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흑인들이 고대로부터 믿던 신앙이었는데, 이들이 노예로 팔려오면서 부두교도 미국과 중남미에 전파된 것이다. 부두교는 아프리카와 서인도 제도, 브라질과 미국 등지에서 오늘날 5천만 명 가량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 부두교는 재즈 음악과 관계있는 것으로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특별히 신비한 힘을 발휘한다는 부두 인형의 종교이다. 하이티의 부두교와 로마 카톨릭 의 저자인 Leslie Demangles는 말하기를 부두교에는 수천의 신들이 있다. 그 신들 대부분은 아프리카식 이름과 카톨릭 성자의 이름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또한 하이티인들은 흔히 상황에 따라 부두교 의식과 카톨릭 의식을 서로 대체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하이티의 선교사 Roger See는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는 부두교와 완전히 결별하지만 부두교를 신봉해 온 일부는 개종 후에 다가올 사탄의 공격이 두려워 개종하기를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미국에 부두교를 대중화한 인물은 마리 라보 라는 여인이다. 뉴올리언즈 지역에서 미용사로 일하던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부두교에는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 죽은 자의 영혼은 다른 사람의 몸 속에 전해질 수 있는데, 부두교에서는 이런 원리로 삶과 죽음이 순환한다고 말한다. 부두교는 뱀을 숭배한다. 반면, 성경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선 뱀이 사악한 동물로 묘사돼 있다. 부두교에서는 뱀이 선한 동물이고, 남성과 여성을 조화롭게 하는 신인 것이다. 부두교의 담발라 신, 즉 뱀 신은 건강과 번영의 신으로, 비를 내리고 땅을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한다. 부두교에는 뱀 말고도 여러 가지 동물신이 있다. 부두교에선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동물을 성스럽게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번 재난을 부두교와 연관지어서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의 경고임에는 틀림이 없겠지만 회개할 일들은 회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이번 기회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하이티에 부어 주시기를 간구한다. 어려움을 통해서 부두교의 나라인 하이티에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의 당한 재앙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계기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한다.


 
1/17/2010           예수님께 대한 예언들

 성경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는 성경이 증명하고, 우리의 경험이 증명하고, 역사가 증거하고, 우리마음에 계시는 성령님이 증거해 주십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많은 예언이 있습니다. 어느 학자에 의하면 성경에 668개의 역사적 예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어느 하나도 잘못되었다고 판장난 것이 없습니다. 역사적인 예언들이 역사적으로 이
루어졌습니다. 내일 태양이 뜰것이다 라고 예언하면 그 예언은 별의미가 없습니다. 태양은 내일도 뜰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500년 후에 미국의 대통령으로 김혜천이라는 사람이 선출될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수십, 수백의 예언들이 하나도 틀림이 없다고 하면 이것은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 대한 예언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예언은 적어도 250가지가 넘습니다. 예수님의 출생과 생애와 미래와 사역에 대한 다양한 예언들입니다. 이러한 예언들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훨씬 이전에 적어도 몇 백년전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선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언들이 한 사람에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은 놀랍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통계학자가 이 확률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이 예언들이 한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확률은1/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이랍니다. 저는 이 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 줄도 모릅니다. 간단 표현하면 1/1097 입니다. 자그마치 0이 97개가 나옵니다. 어떤 분의 계산에 의하면 로토 티켓을 매번 한장씩 사서 14번을 계속해서 맞추는 것과 같은 확률이랍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 많은 예언이 예수님의 생애에 이루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관계되어진 예언 몇가지를 말하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탄생, 유다 지파에서 탄생,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 베들레헴에서 탄생 등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히. 메시아,  뜻: 기름부음을 받은  자) 라는 사실은 너무도 놀랍고 감격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신 사실은 오늘도 주님이 살아계신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입증합니다. 성경은 믿을만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1/10/2010           하얀상자 둘

성도님들과 더 깊은 교제를 위하여서 하얀 상자 둘을 준비했다. 우리 정목사님이 온 뉴욕을 뒤져서 열심으로 찾아낸 이 두개의 하얀 상자는 목양실 들어가는 문 양 옆에 설치했다. 이 하얀상자 둘이 나와 성도님들의 관계를 더 깊게 하고, 교회를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하는데 쓰임받게 되기를 소원한다.하나의 상자는 기도제목 상자이다. 나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다양한 방법을 쓴다. 때로는 늘 앉아서 예배드리는 자석을 보면서 기도하기도 하고, 주소록을 놓고 기도하기도 한다. 눈을 감고 성령님이 떠으르게 하시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있다. 송구영신예배 때에 기록한 일년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할 때가 많다. 또한 전화나 만남을 통해서 기도해 주세요 부탁받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기도하면서 점검을 자주 한다. 하지만 오래된 기도제목들이 있다. 기도가 응답된 것인지, 아니면 계속 기도할 것인지, 또 다른 기도제목이 없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래서 좀더 기도생활에 더 가까운 교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 오던 차에 하얀상자를 설치하게 되었다. 하얀상자를 이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의 기도제목을 카드에 써서 넣으시면 된다. 개인적인 기도제목으로 목사님만 기도해 주세요, 혹은 중보기도팀만 기도해 주세요, 혹은 전 성도님들이 함께 기도해 주세요의 항목에 체크하시면 누가 기도할 것인지를 조정할 수 있다. 따끈따끈한 기도제목을 알고 싶다. 그리고 기도응답 받으셨을 때에는 간증도 반드시 해 주시면 더욱 좋겠다. 풍성한 기도응답이 있음을 믿는데 아는데 간증이 너무 빈약해서 하나님께 죄송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또 다른 하나의 하얀상자는 하나님 말씀 상자이다.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질문을 넣는 상자이다. 여러가지 궁금한 것들이 있지만 그냥 지나칠 때가 많다. 하지만 더 깊은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기 위하여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말씀을 읽는 가운데 생긴 질문이라든지, 평소에 궁금한 것, 더 깊이 알고 싶은 것, 이해가 잘 안되는 것, 의심이 나는 것, 고민이 되는 것, 힘든 것, 사랑의 제안등 무엇이든지 좋다. 이 상자를 통해서 말씀을 깊이 체험하고 서로를 함께 알아가는 은총을 누리는 귀한 통로가 되기를 원한다. 성도님들이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어떤 고민을 가지고 계시는지 즉시즉시 알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하이테크 시대를 사는 성도들은 꼭 여기에 넣으실 필요는 없다. 나에게 문자를 보내 주시던지 이메일을 보내셔도 된다. 대화의 통로는 개인적인 것은 직접하든지, 함께 알아야 할 내용은 목회자 코너나 말씀증거의 시간이나 간단한 유인물들을 통해서 서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정기적으로 개봉하는 사람은 담임목사이다. 물론 잠금장치도 되어있다. 그리고 가능한 실명을 써주시면 좋겠다. 그래야 의사소통이 건강하고 바르게 되고, 기도응답의 여부를 빨리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얀상자 둘, 이 상자들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과 마음이 닿는 은혜와 진리와 사랑의 깊은 대화들이 무르익어가기를 기도한다. 
 

1/3/2010           성경을 사랑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고, 느끼고, 체험한다. 성경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듣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다.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신앙과 생활의 지침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결코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다.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성경은 눈이나 입이나 머리나 또는 가슴으로 읽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전인격과 삶과 행동으로 읽어야 한다. 성경의 깊은 것을 설사 깨달았다고 해도 우리의 생각과 언어와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조율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사상과 철학을 본다. 하나의 고전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인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편지는 다른 사람이 읽으면 언어의 유희처럼 보이지만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는 뜨거운 감격이 된다. 거기에는 님의 숨결이 있고, 따뜻한 감동이 있고, 가슴 저미는 사랑의 멧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랑하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다. 새해에는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고, 성경과의 사랑을 시작하고, 성경 사랑을 키우고, 성경을 더 깊이 알아가는 가운데서 인생의 행복을 느끼고 누리게 되기를 소원한다. 성경사랑의 정도가 날마다 더 깊어지기를 원한다.
새해에는 성경의 깊은 은혜의 바다에 들어가 보고싶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마음의 깊은 것을 깨닫고 누리고 싶다. 잘 모르거나 궁금한 것은 솔직히 물어보고, 아는 것은 한번 더 깊이 생각해 보고, 깨달아지는 것은 마음에 새기고, 마음에 새긴 것을 순종함으로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고 싶다. 금년에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복에 흠뻑 젖고 싶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저수지 문을 활짝 여셔서 부어주시는 그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고 또 누리고 싶다.  주님! 성경을 사랑합니다.